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이 알려준 것

입력
2021.03.26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아이돌에 별 관심 없는 내게 변화가 생겼다.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한 걸그룹이 자꾸 궁금해진다. 팬 클럽에 들 정도는 아니지만 영상을 찾아보고 소식을 검색한다.

'역주행 신화의 주인공' '존버의 상징' 브레이브걸스 얘기다. 2016년 2기 브레이브 걸스가 활동을 시작해 4년 넘게 정산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쓸쓸히 해체를 준비하던 민영, 유정, 은지, 유나는 4년 전 노래 '롤린(Rollin)'으로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찍고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석권했다. '이게 머선 129(이게 무슨 일인가를 뜻하는 새 말)'는 딱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평균 나이 30.5세. 이들이 깜짝 스타가 된 과정이 극적이다. 지난달 24일. 유튜버 비디터가 '브레이브걸스 롤린 댓글모음' 영상(현재 조회수 1,300만 이상)을 올렸다. 브레이브걸스가 나오는 공연이나 방송 장면 그리고 댓글을 편집한 3분 19초짜리 영상은 네 명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이들은 영상이 올라온 당일 소속사 대표 용감한 형제와 해체를 포함해 앞날을 상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군 시절 이들의 공연을 직접 보고 노래를 듣던 예비역 장병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밀보드(밀리터리와 빌보드를 합한 말로 군인들 사이에 인기를 보여주는 척도) 상위권에 있는 브레이브걸스를 돕자며 "우리가 보답할 때가 왔다" "이게 진짜 ARMY다"라는 응원 글을 쏟아냈다. 자신의 군번을 적으며 추억을 남기는 '인수인계 릴레이'가 펼쳐졌다.

이들의 바람이 통했는지 유튜브 알고리즘은 브레이브걸스를 몰랐던 이들이 접하도록 '알람'을 보냈다. 나 역시 그 알람에 이들을 알게 됐고.

주로 불러주는 곳이 군 부대다 보니 왕복 12시간 배를 타야 하는 백령도를 포함해 육해공군과 해병대 가리지 않고 전국 곳곳을 찾아 60회 이상 공연했고, 그때 그 군인들의 응원과 '좋아요'가 이들을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브레이브걸스 신드롬을 설명하기에 모자란다. 무엇보다 나이 성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이 좋아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공감의 힘이다. 사람들은 브레이브걸스는 힘든 거 참고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그 노력이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호응하고 있다.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한 2030에게 버텨보니 되더라는 긍정적 인식을 심어줬다" "아등바등 살아온 브레이브걸스를 보면서 나 자신이 투영돼 공감이 된다"는 글을 남겼다.

브레이브걸스 멤버들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자격증을 따고 취업을 위해 역사공부를 했다'는 얘기를 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을 흘렸다는 댓글도 많다.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걱정과 우리 사회가 과연 공정한가에 대한 의문을 품은 청년들이 걸그룹의 역주행을 보고 작은 희망을 찾았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실제 사례를 찾지 못했는데 걸그룹의 이례적 성공에서 확인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기성세대로 청년들이 안타까운 상황에 놓이게 된데 뭔지 모를 책임감도 느껴진다.

그래도 브레이브걸스에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항상 응원해. 포기하지 마. 좋은 노래 들려줘서 고마워."

박상준 이슈365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