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 본격화로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가 증가하면서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도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신장 이식 대기자는 10년 전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했을 정도다. 반면 장기 기증자는 좀처럼 늘지 않는다. 뇌사 기증자는 3, 4년째 연 500명 안팎으로 정체돼 있다. 국내 장기 기증은 여전히 생존 기증자(2020년 3,891건)가 전체의 60%를 넘는다. 절대다수가 가족 기증자다.
□ 우리나라 장기 기증은 유교 전통의 영향을 크게 받은 점이 특징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관념 때문에 망자의 몸을 훼손하는 뇌사 기증 비율은 외국에 비해 크게 낮다. 반면 부모에게 자신의 몸을 바칠 만큼 강력한 효 문화의 영향으로 자녀들의 기증 비율이 매우 높다. 통계에 따르면 기증자와 이식자를 국가가 지정해주는 뇌사 기증자의 경우 기증자는 모든 연령대에 비슷하게 분포하지만 기증자가 이식자를 지정하는 생존 기증자는 20, 30대가 압도적으로 많다. 전형적으로 ‘아픈 50대 부모에게 20, 30대 자녀들이 장기를 기증’하는 형태인 것이다. 이는 보은이자 효의 실현으로 간주된다.
□ 문제는 이런 생존 기증자들의 기증 후 고통이 외면받고 있다는 점이다. 신장 기증자의 30% 이상이 장기 기증 후 고혈압, 고지혈증, 호흡기 질환 등을 새롭게 앓고, 기증자 10명 중 4명은 우울감ㆍ불안감ㆍ두려움을 겪는 등 생존 기증자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신체ㆍ정신적 어려움이 임상자료로 축적돼 있다. 하지만 가족 기증자들은 쏟아질 도덕적 비난 때문에 후유증이 생겨도 홀로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다.
□ 장기 기증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지난 23일 기본계획을 내놨다. 장기 기증과 관련된 정부의 5개년 계획은 처음으로 뇌사자 예우문화 정착, 기증문화 홍보, 새로운 기증원 발굴을 위한 심장사(死) 장기 기증 허용 논의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생존 기증자에 대한 보호대책은 기증자가 근로자일 때 현행 14일인 유급휴가를 확대한 게 고작이다. 인센티브를 최소화해 생존 기증을 가급적 억제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고 하지만 가족의 고통 앞에서 윤리적 선택을 강요당한 가족 기증자들의 고통을 이런 식으로 내버려둬도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