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사회 나서자 LG는 CEO가 '맞불'… 끝 안보이는 '배터리 분쟁'

입력
2021.03.2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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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주총서 소송 "엄정 대처" 밝혀
SK이노 감사위 강경 입장 대응 차원인 듯
교착 상태 장기화… "당분간 주도권 싸움 계속될 것"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 배터리 사업부문)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이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달 11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 준 최종 판결 이후 합의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도 나왔지만 양사의 수뇌부가 직접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면서 오히려 더 격렬해지는 분위기다.

25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LG화학 주주총회에서도 관심은 단연 SK이노베이션과 진행 중인 배터리 분쟁 대응에 쏠렸다. 이날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최고경영자(CEO)는 "SK와의 소송전에 엄정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영업비밀 소송과 관련해 CEO가 공식 석상에서 직접 '엄정 대처'를 못박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 부회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경쟁사를 '가해자'로 지칭하며, 작심한 듯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신 부회장은 "피해규모에 합당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엄정하게 대처해 나가겠다"며 "공정한 시장 경쟁을 믿고 기술개발에 매진 중인 전 세계 기업들과 내가 쓰는 제품이 합법적으로 만들어졌을 거라 믿고 구매하는 고객을 위해서라도 이번 사안을 유야무야 넘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30여 년간의 글로벌 비즈니스 경험에 비춰봐도 ITC가 소송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는 물론 조직문화까지 언급하며 가해자에게 단호한 판결이유를 제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ITC가 이번 사안이 갖는 중대성과 심각성을 엄중하게 인식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지식재산권에 대한 존중은 기업 운영에 있어서 기본을 준수하는 일에 해당한다"며 "경쟁사는 국제무역 규범에 있어서 존중 받는 ITC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원인을 글로벌 분쟁 경험 미숙으로 일어난 일로만 여기는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날 신 부회장의 작심 발언은 최근 SK이노베이션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가 '미국 사업 철수'까지 감안하며 "무리한 요구 조건은 수용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SK이노베이션 이사회는 이달 10일 사외이사 전원이 참석한 확대 감사위원회를 개최하고 "경쟁사의 요구 조건을 이사회 차원에서 면밀히 검토하겠지만,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지속할 의미가 없거나 사업 경쟁력을 현격히 낮추는 수준의 요구 조건은 수용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낸 바 있다.

또 신 부회장이 '글로벌 분쟁 경험 미숙'에 대해 언급한 것 역시 SK이노베이션 감사위원회가 이번 소송의 패인으로 미국 사업체계 대응에 미숙했던 점을 질책한 부분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최우석 SK이노베이션 대표감사위원은 감사위원회에서 "소송의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방어의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미국 사법 절차 대응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패소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고 전한 바 있다.

업계에선 이처럼 양사의 컨트롤타워인 이사회와 CEO의 잇따른 강경 발언이 교착 상태에 빠진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계산된 수순으로 보는 시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기차 업계에 새로운 이슈가 터지고 있고, 이에 대한 양사의 유·불리 판단 셈법이 다르기 때문에 당분간 첨예한 주도권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며 "다음 달 11일까지 유효한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따라 또 한번 판도가 바뀔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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