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 참전용사 손, 그날의 상흔 잊혀질까봐 붓 들었어요"

입력
2021.03.25 13:30
김기환 화가, 참전용사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전달
권기형 씨 "대한민국 모든 전우를 위한 영광의 상처"


"제2연평해전 참전 용사인 권기형 씨의 상흔이 기억 속에서 옅어지는 것 같아 붓을 들었습니다."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도발 등으로 희생된 국군 장병을 기리기 위한 '서해 수호의 날'을 하루 앞둔 25일 경북 칠곡군에 특별한 그림이 전달됐다.

이날 칠곡군에 따르면 지역 내 가산면에서 갤러리 쿤스트를 운영하고 있는 김기환(52) 서양화가가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부상을 입은 당시 권기형 상병의 왼손을 가로 60㎝, 세로 73㎝ 크기의 유화로 표현해 군에 전달했다. 작품 제목은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김 작가는 "그 날의 아픔이 느껴져 그림을 그리는 내내 무척 힘들었다"며 "앞으로 참전 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알리는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 그림을 위해 한 달여 동안 작품에 매달렸다.

김 작가는 지난해 6월 칠곡군이 호국영웅 8인을 초청해 호국영웅 배지를 전달하고, 지역 청소년과 소통의 시간을 가진 '대한민국을 지킨 8인의 영웅' 행사에서 권기형(39·구미시) 씨의 손을 처음 접했다.

권 씨는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 함정의 기관포탄에 K-2 총열 덮개와 함께 왼손 손가락이 통째로 날아갔지만 개머리판을 겨드랑이에 지지해 탄창 4개를 한 손으로 교환하면서 응사했다. 자신도 심각한 부상임에도 다른 부상 동료들을 챙기며 끝까지 전투에 임했다.

권 씨는 총탄으로 으스러진 손마디에 골반 뼈를 이식하고 손목의 살로 복원했지만 손가락은 현재까지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 지금도 진통제가 없으면 통증으로 잠을 이루기 어렵다.

자신의 손 그림을 접한 권 씨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권 씨는 "제 손의 상처는 대한민국의 모든 전우를 위한 영광의 상처"라며 "마음의 상처까지도 표현해 주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대한민국을 위한 호국영웅의 희생은 잊어서도 잊혀져서도 안 된다"며 "김 작가의 손 그림을 많은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하겠다"고 말했다.


칠곡= 김재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