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기 SG배 명인전] 암기보다 체화

입력
2021.03.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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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이창호9단 백 최철한9단 본선 16강<3>




바둑AI 등장 이후에도 이창호 9단의 대국은 한결같다. 바둑 공부 역시 AI를 사용하기 보단 주변 기사들의 기보를 통해 AI수법을 흘려듣는 정도다. 그럼에도 한국 바둑리그 등 각종 시합에서 꾸준한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이창호 9단의 대국을 보고 있으면 ‘폼은 일시적이나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문구가 절로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창호 9단은 평소 후배 기사들에게도 단순 암기보단 체화가 중요하단 사실을 강조한다. 이번 대국 역시 그동안 쌓아 온 자신만의 스타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있다.

백4는 팻감을 위장한 삭감 수. 흑5로 패를 해소하자 백6으로 우변을 보강한다. 흑9는 어쩔 수 없는 후퇴. 중앙을 뚫고 나왔다가는 백9 자리를 허용하며 도로 곤경에 빠지게 된다. 백10으로 최철한 9단이 한발 더 밀고 들어왔을 때 놓인 흑11이 보기보다 큰 실착이었다. 5도 흑1로 막아 상변을 넘어갈 자리. 이렇게 두었다면 백8의 하변 침입을 기점으로 이제부터 시작인 바둑이었다. 실전 백12까지 돌이 오자 상변에 차단하는 수가 남아있게 되었다. 백18의 응수 타진에 받아 준 흑19 역시 실수. 6도 상변 흑 넉 점은 끊겨도 반대편으로 연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흑1로 반발할 자리였다. 흑5의 이단 젖힘을 통해 중앙 백 두터움을 최대한 견제할 장면이었다. 흑11로부터의 나비효과로 인해 이창호 9단의 연속 실수가 등장했다.

정두호 프로 3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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