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낼 땐 '외국인' 복지 혜택은 '한국인'… '체리피커' 검은머리외국인 세무조사

입력
2021.03.24 17:00
12면
외국 국적 취득한 뒤, 국내에선 '비거주자' 행세
조세회피처 동원해 탈세한 외국계 기업 자회사도


# 외국 영주권자인 A씨는 자녀들에게 물려줄 해외 부동산을 매입하기 위해 현지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A씨는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부동산을 사들인 뒤 법인 지분을 자녀에게 넘겨줬다. 시민권자인 A씨 자녀들은 해당 국가에 증여세를 신고했지만, 그 나라에서 인정하는 자녀 상속 공제 혜택을 받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국세청은 A씨의 자녀들이 시민권자이긴 하지만 유학기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국내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증여세를 내야 하는 ‘거주자’라고 판단했다. 결국 국세청은 세무조사에 착수했고, A씨의 자녀에게 10억 원대 증여세를 추징했다.


100억대 자산가 이중국적자 행세하며 소득세 안내

국세청이 사실상 한국에 살면서도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납세 의무를 저버린 ‘체리피커’ 검은머리 외국인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24일 밝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으로 돌아오는 외국 국적자들이 늘어나면서, 여기에 편승한 얌체족을 겨냥한 것이다. 세무조사는 이중국적자 14명을 포함해 총 54명의 역외 탈세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국세청은 A씨처럼 한국에 거주하면서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등 거주자로서의 혜택은 제대로 받으면서도 국내 체류일수를 조작하는 등의 방식으로 거주자가 아닌 척 위장해 납세의 의무는 피한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적발된 B씨가 대표 사례다. 그는 가족과 함께 국내 거주하며 의료 혜택을 누리고 있었으나, 이중국적자로 행세하며 소득 신고를 누락했다. 그가 보유한 부동산은 약 100억 원대로, 국내에서 부동산 회사도 운영하고 있었다.



회사 형태 바꾸거나, 조세회피처 이용도


국내에서 벌어들인 돈을 해외로 빼돌리기 위해 회사 형태를 바꾼 사례도 있었다.

다국적기업인 C사의 한국법인은 당초 외부감사, 공시 의무를 피하기 위해 '유한회사'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2019년 법 개정으로 매출액 일정 수준 이상인 유한회사도 감사 대상이 되자 이번에는 '유한책임회사'로 조직을 바꿨다.

이들은 해외의 본사에 과도한 규모의 경영자문료를 지급해 국내 법인을 결손 상태로 만들고, 국내 관계사로부터 받아야 할 용역 대가, 지원 수수료 등을 시세보다 적게 받기도 했다. 국세청은 이 같은 내부자 거래를 통해 국내 소득을 해외로 부당이전한 것으로 보고 100억 원대 법인세를 추징했다.

해외 조세회피처에 법인을 세우는 수법을 쓴 회사도 있었다. 외국계 기업의 국내 자회사인 D는 세율이 훨씬 낮은 제3국에 있는 페이퍼컴퍼니로 서비스 판권을 넘긴 뒤, 페이퍼컴퍼니에서 매출이 발생한 것처럼 속여 국내에 세금신고를 하지 않았다. 국세청은 세무조사에서 D사의 탈세 혐의를 확인한 뒤 수백억 원대 법인세를 추징하고,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 고발했다.

노정석 국세청 조사국장은 "역외탈세 혐의를 철저히 검증해 과세하고, 조세포탈 혐의가 확인되는 경우 검찰에 고발하는 등 엄정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세종 = 박세인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