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중국 동시제재 vs 中·러 "내정간섭 말라"...신냉전 재편 정면 충돌

입력
2021.03.23 18:00
5면
美, '파이브 아이즈' 국가와 中 신장 탄압 규탄
블링컨 국무, NATO 회의 참석차 첫 유럽 방문
중·러 외교, "인권문제 정치화, 내정간섭 말라"


지난주 알래스카 담판에서 난타전을 벌인 미국과 중국이 세력을 규합하며 동시다발 제재 및 맞대응으로 정면 충돌하고 있다. 미국이 인권 문제를 고리로 유럽 우군 규합에 나서자 중국과 러시아는 "인권문제 정치화, 내정간섭 말라"며 강력 반발, 공동대응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유럽연합(EU)과 중국은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를 두고 제재를 주고 받으며 상대측 대사를 초치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장관회의 참석차 취임 후 처음 유럽을 방문하는 한편, 영국ㆍ캐나다 등 동맹국과 중국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앞서 EU가 인권 유린을 이유로 중국 포함 6개국의 개인과 기관 제재 방침을 밝히면서 미국이 '서방 동맹'을 끌어모아 중국 포위를 본격화한 상황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동맹과 함께 하는 대중(對中) 견제’ 원칙이 줄줄이 실현되는 셈이다.

미국은 이날 호주ㆍ캐나다ㆍ뉴질랜드ㆍ영국 등 ‘파이브 아이즈(Five Eyesㆍ서방 5개국 정보동맹)’ 소속 국가와 함께 중국의 신장 자치구 이슬람 소수민족 위구르족 탄압 관련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5개국은 외교장관 명의로 발표한 성명에서 “중국의 신장 인권 침해와 유린에 대한 깊고, 지속적인 우려로 우리는 뭉쳤다”며 “우리는 함께 할 것이고, 신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중국에)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EU 조치와 병행해 신장에서의 인권 침해와 유린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조율된 행동을 취한다”고 밝혀 같은 날 EU가 발표한 제재와 보조를 맞추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EU는 이날 중국과 함께 러시아ㆍ북한 등 6개국 4개 기관 11명에게 제재를 부과했지만 주요 목표는 중국이었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 이후 유럽 국가의 첫 집단 제재인 만큼 향후 인권을 넘어 무역ㆍ무기 금수 제재 같은 추가 조치와 갈등으로 이어질 공산도 크다.

블링컨 장관은 18~19일 미중 2+2 회담에 앞서 15~18일 한국ㆍ일본 방문으로 동북아 핵심 동맹을 챙긴 데 이어 미중 회담 직후에는 22~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NATO 회의 참석 일정을 잡았다. 이번 유럽 방문에선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은 물론 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이탈리와 외교장관과의 개별 회담도 예정돼 있다. 군사안보 협력 강화는 물론 ‘민주주의 가치’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대서양 동맹’을 강화하겠다는 행보다. 미국 및 서유럽 대 중국·러시아라는 신(新)냉전 구도 재등장의 신호탄인 셈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날 서방세계 등이 인권을 정치화하거나 이를 이유로 국내 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양국 외무장관 공동성명으로 맞섰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회담 후 성명을 통해 주권국가가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택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다른 나라들이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이들은 민주주의에 있어 표준 모델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국제적 안전을 위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회담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와 달리 블링컨 장관은 “이번 제재는 인권을 보호하고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잔악 행위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려는 다자협력이 계속될 것이란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속 동맹 경시와 달리 ‘다자주의ㆍ동맹’을 활용한 바이든 식 외교 해법에 속도를 올리는 형국이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