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란에 가격도 뜀박질…하반기 노트북·스마트폰값도 뛸 듯

입력
2021.03.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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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반도체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가뜩이나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반도체 시장에 예기치 못한 재해가 잇따라 터지면서다.

업계에선 이번 여파로 올 하반기부터 노트북,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 가격 인상 역시 이미 예고된 수순이란 전망도 나온다. 제조사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섣부르게 원가 인상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경우, 자칫 고객 이탈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5개월 새 세계 반도체 공장 11곳 멈췄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선 각종 재해에 따른 연이은 공장 가동 중단으로 공급 부족 사태가 심화되고 있다.

지난 19일엔 세계 차량용 반도체 제조 3위인 일본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생산라인 가동을 멈췄다. 최근 5개월 동안 11곳 안팎(미국, 대만, 일본)의 반도체 공장 가동이 지진이나 화재 등으로 중단됐다.


여파는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생산 총량이 한정된 반도체 시장 특성상, 1곳의 공장만 멈춰서도 연쇄 파급 효과는 상당하다. 예컨대 이번에 가동을 멈춘 일본 르네사스 공장에서 생산되는 차량용 반도체를 다른 공장에서 생산하면 다른 종류의 반도체 칩은 만들지 못한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반도체 공급난'이 점점 더 꼬이는 배경이다.

삼성전자도 "2분기부터 생산 영향" 토로

연초만 해도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완성차 업체들이 타격을 받았지만 최근엔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 제조사들이 영향권에 들었다. 스마트폰, TV 노트북 등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전력반도체(PMIC),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등의 품귀 현상이 극심해지면서다.

SK증권에 따르면 올해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대비 3%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필수 반도체 칩 부족으로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DDI의 수요 대비 공급은 20% 이상 부족하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DDI 공급 부족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전자기기 제조업계 또한 이미 반도체 칩 부족을 실감하고 있다. 애플은 반도체 부품 부족으로 올 1분기 생산량을 1억대에서 8,800만대로 하향 조정했다. 샤오미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칩 부족으로 중동과 동남아시아의 일부 저가 모델 출시를 중단했다.

세계 1위 스마트폰 업체인 삼성전자도 비상이다. 스마트폰 사업 중심의 삼성전자 IM부문을 책임진 고동진 사장은 최근 주주총회에서 "반도체 관련 부품의 수급 불균형이 굉장히 심각하다"며 "2분기부터 생산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하반기부터 'DDI 공급 부족' 여파가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DDI 가격 10% 인상…하반기 IT기기 값도 오를 듯

극심한 반도체 수급난은 반도체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파운드리)들이 생산단가를 올리자, 주문업체인 반도체 팹리스(설계회사)들도 이를 반영해 칩 가격을 올리면서다. 최근 DDI 가격은 1분기에만 평균 10% 넘게 뛰었다. 메모리반도체 가격도 줄줄이 오르고 있다.


핵심 부품 가격이 뛰면 제조사들로서도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부터 노트북·스마트폰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 지출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엔 가격 경쟁이 치열해 제조사들로서도 제품 가격 인상엔 신중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DDI 분야 글로벌 1위)나 LG전자(계열사로 팹리스 보유)는 그나마 사정이 낫겠지만, 반도체 업체와의 협상력이 약한 중소제조사들은 제품 가격 인상 압박을 더 심하게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SK증권은 "올해 전자제조사들은 공통적으로 부품 확보와 수익성 유지 사이에서 고심이 깊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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