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은 동쪽으로 내장산에서 유달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두르고 있고, 나머지 세 방향으로는 올망졸망 낮은 구릉이 펼쳐진다. 고창(高敞)이라는 지명 그대로 높고도 넓다. 봄이 예쁘지 않은 곳이 없지만, 고창의 봄 색깔은 유난히 산뜻하다. 거기에 예스러운 풍치까지 더했으니 고색창연하다.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한 ‘색깔 있는’ 고창 명소를 찾아간다.
아산면 선운사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로, 한국 불교사에 빠지지 않는 큰 절이다. 사찰 건물로는 드물게 큰 정면 9칸 규모의 만세루 전각을 비롯해 5점의 보물을 보유하고 있다. 선운사 동백나무 숲 역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3,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대웅전 뒤편 산비탈을 빼곡하게 덮고 있다. 조선 성종 때인 1478년 산불로부터 사찰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방화림이라 한다. 겨울에도 꽃이 피는 동백이지만, 선운사 동백은 개화가 좀 더뎌 4월 중순에야 절정에 달한다. 그래서 따로 춘백(春柏)이라고도 부른다.
가을 선운사를 상징하는 꽃무릇이 눈이 부시게 찬란한 데 비해 동백은 말갛고 수더분하다. 절정이라 해도 숲을 온통 붉게 물들이지는 못한다.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보다 바닥에 툭툭 떨어진 꽃송이가 한결 처연하면서도 아름답다. 세상의 고통과 번뇌를 툭툭 털고 해탈을 궁극적인 이상으로 삼는 불가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일주문에서 사찰에 이르는 선운사 계곡은 다양한 수종과 풀꽃이 어우러져 웬만한 수목원을 능가하는 생태 학습장이다. 한류 붐을 일으킨 ‘대장금’을 비롯해 영화 ‘곡성’, 드라마 ‘녹두꽃’ 등을 사찰과 주변 계곡에서 찍었다.
공음면 학원농장은 1994년 관광농원으로 지정받은 곳이다. ‘경관농업’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시기에 시작해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농업 관광지로 자리를 굳혔다. 농장 이름인 학원(鶴苑)은 무언가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학이 노니는 들판이라는 의미다. 농장이 위치한 공음면 들은 학의 날갯짓처럼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구릉이다. 파도처럼 넘실대는 언덕에 청보리가 일렁거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눈이 맑아진다.
현재 학원농장은 초록의 싱그러움 그 자체다. 청보리가 파릇파릇한 언덕에 황토색 산책로가 여러 갈래로 휘어진다. 보리 이삭이 패고 유채 꽃이 피려면 아직 한 달이 남았고, 황금 물결이 일렁이기까지는 두 달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짙은 초록으로 뒤덮인 들판만 봐도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린다.
학원농장을 배경으로 찍은 드라마로 ‘쓸쓸하고 찬란한 신, 도깨비’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 농장에서 촬영한 드라마와 영화를 모두 꼽으면 20편이 넘는다.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 ‘육룡이 나르샤’ ‘사임당, 빛의 일기’, 영화 ‘늑대소년’ ‘스물’ ‘만남의 광장’ 등이 학원농장을 거쳐갔다.
고창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고창읍성이 있다. 읍내 남쪽 낮은 산을 빙 두르고 있는 성이다.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로 단종 원년(1453)에 쌓았다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했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1,684m에 달하는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었던 덕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성 안에 있던 동헌과 객사를 비롯한 22개 관아 건물은 대부분 소실됐지만 일부를 복원한 상태다.
성벽 가장자리로 소나무가 울창을 숲을 이루고, 5월이면 철쭉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성 내부에도 여러 갈래의 산책로가 조성돼 호젓하게 걷기에 그만이다. 요즘 주목받는 곳은 객사 뒤편 맹종죽 숲이다. 영화 ‘왕의 남자’를 비롯해 ‘최종 병기 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과 드라마 ‘군주’ 등 여러 시대극의 배경이 된 장소다. 대숲의 규모는 아담하지만 밀도와 운치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하늘 높이 쭉쭉 뻗은 대숲에 들어서면 한낮에도 볕이 거의 들지 않고 바람마저 잠잠해 아늑하기 그지없다. 굵은 대나무 사이에 소나무와 키 큰 활엽수가 몇 그루 섞여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