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애틀랜타 사건' 어디서든 가능… 지구촌에 뿌리 내린 아시아계 혐오

입력
2021.03.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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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호주 등에도 만연한 아시아계 혐오
코로나19 이후 혐오범죄 더 빈번해져

영국 사우샘프턴대 강사인 중국계 펑왕은 올해 2월 집 근처에서 조깅을 하다 구타를 당했다. ‘중국 바이러스’ 등 인종차별 발언을 쏟아내며 그를 때렸던 남성 4명은 경찰에 붙잡혔지만, 왕은 지금도 극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왕은 “영국에서 내 미래와 아들의 안전을 걱정하게 됐다”고 호소했다.

미국 CNN방송은 21일(현지시간) 왕의 사례를 전하며 아시아인 차별ㆍ혐오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아시아계 6명이 숨진 조지아주(州) 애틀랜타 총격사건과 같은 ‘증오범죄’는 다른 서구 국가에서도 흔한 일이다. 방송은 “많은 유럽 국가들이 민족을 기준으로 인구통계학적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아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동아시아인 대상 혐오범죄가 늘었다”고 전했다.

일례로 영국 런던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6~9월 동아시아인 외모와 관련된 혐오범죄는 전년 동기 대비 96%나 증가해 200건이 넘었다. 또 호주에서는 중국계 호주인 3분의 1 이상이 지난해 인종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인종차별은 오랜 문제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 일부 정치인들이 코로나19와 중국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동아시아계에 대한 편견이 더욱 강화됐다.

언어ㆍ신체적 폭력만이 아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자국 방송에서 아시아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인종차별의 한 형태라고 봤다. 베를린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일하는 중국계 포포판은 “아시아인은 영화에서 음식점 종업원이나 스파에서 일하는 어린 소녀처럼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반영한 역할만 한다”고 말했다. DW는 “반(反)아시아 인종주의가 항상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독일 사회에 강하게 닻을 내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현실이 이렇지만 아시아인 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낮다. 스페인 언론인 수사나 예는 CNN에서 “스페인 언론은 애틀랜타 사건을 크게 보도하지 않는다”며 “많은 사람들은 인종차별적 시각을 자각조차 못한다”고 꼬집었다. 2019년 스페인 정부 보고서를 보면 이 나라에 거주하는 아시아 국적 인구의 2.9%가 증오범죄 피해자였는데, 이 또한 언어장벽 등으로 과소 보고됐을 확률이 높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을 계기로 미국 안팎에선 아시아인을 향한 차별에 항거하는 움직임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내 아시아계 인권단체 ‘시큐리티포올’ 대변인은 “부모 세대는 인종차별(피해)을 받아들였지만 이민 2세대인 우리의 책임은 다음 세대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프랑스를 더 좋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달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