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이 남긴 난제 '북한인권결의안'... 정부 "막판까지 고심"

입력
2021.03.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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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결의안(이하 결의안) 채택을 앞두고 정부의 고민이 유독 깊다. 지난 2년간 공동제안국에 불참해왔으나 지난주 방한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수장이 '북한 인권'을 콕 집어 지적하면서다. 공동제안국에 참여할 경우엔 북한뿐 아니라 중국의 반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터라 결의안 채택 직전까지 정부의 고심은 계속될 전망이다.

정부, 지난 2년간 美 인권위 탈퇴로 부담 감소

외교부 관계자는 21일 "올해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할지 여부를 현재까지 결정하지 못했다"며 "며칠의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남북관계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유엔은 2005년 이후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해 왔다. 결의안에는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평가와 인권 개선 권고가 담기는데 민주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공동제안국에 이름을 올려왔다. 올해 초안에는 "북한에서 계속되는 제도적이며 광범위하고 중대한 인권 유린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43개국이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상태로, 결의안은 23일쯤 채택될 예정이다.

한국은 지난 2009년부터 공동제안국에 참여해오다 2019년 이후 불참했다. 2019년 당시 우리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비롯한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심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위기 관리 차원이었지만 북한이 극도로 민감해하는 인권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정부는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컨센서스(합의)에는 참여했다"고 대응해 왔다. 북한을 의식해 결의 채택을 주도하지 않지만 결론적으로 찬성하는 절충적 태도를 취한 것이다. 당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18년 6월 유엔 인권이사회로부터 탈퇴 선언한 이후였던 만큼 미국 등 동참 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

北·中 반발 가능성에 막판까지 고심

그러나 올 1월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미국은 유엔 인권위 복귀에 이어 결의안에도 3년 만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8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담 뒤 공동회견에서 "북한은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다"고 작심 발언을 한 배경이다.

한국에서 결의안 초안과 동일한 표현을 언급한 것은 사실상 우리 정부에 동참을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한국이 계속해서 북한 인권 문제를 피해갈 경우 미국 조야에서 축적되고 있는 한국의 중국 경도론이 더욱 굳어질 수 있다"고 했다.

북한과의 조속한 대화 재개를 바라는 정부로선 북한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16일 담화에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폐기와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거론했다. 한미연합군사연습을 명분 삼았지만 속내는 우리 정부의 대북 압박 동참에 대한 경고로도 해석됐다.

의도치 않게 중국까지 자극할 개연성도 거론된다. 블링컨 장관은 방한 중 중국을 북한과 같은 '인권유린국가'로 규정했다. 중국 측에는 한국의 공동제안국 참여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한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셈이다.

조영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