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채드윅 보즈먼은 44년 짧은 생애 동안 흑인 공동체에 많은 영감을 던졌다. 흑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첫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블랙 팬더’(2018)로 자부심을 심었다. 숨지기 전까지 투병 사실을 감추고 연기에 매진하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 레이니, 그녀는 블루스’는 뜨겁고 화려하게 그러나 겸허하게 살다 간 보즈먼이 남긴 마지막 유산이다.
20세기 초반을 풍미했던 유명 블루스 가수 마 레이니(1886~1939)가 중심 인물이다. 흑인들 사이에서 스타로 군림했던 마 레이니는 백인들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백인 음반 제작자들은 마 레이니와 노래를 녹음하기 위해 애가 탄다. 그런 백인들을 농락하듯 마 레이니는 거드름을 피우고,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내세우곤 한다. 일단 음반만 만들면 거액의 돈을 손에 쥘 수 있으니 백인 제작자들은 마 레이니의 비위 맞추기에 정신 없다. 영화는 마 레이니가 음반 녹음을 하는 하루를 통해 인종 간 갈등, 동족과 반목을 압축해낸다.
영화는 마 레이니의 까칠한 면모를 통해 불우한 인종 차별을 역설적으로 그려낸다. 마 레이니는 음료 한잔을 마실 때도 까다롭게 굴며 백인들을 괴롭힌다. 길거리에서 자신이 타고 있던 차 운전사가 다른 차의 백인 운전사와 시비가 붙었을 때도 경찰하고도 말싸움을 불사한다. 백인 제작자가 경찰과 백인 운전사에게 돈을 쥐어 주며 읍소를 해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한다. 제작자가 마 레이니에게 굽신거리는 이유는 단 하나, 돈이다. 제작자들은 형식만 다를 뿐 마 레이니를 착취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마 레이니는 이런 권력 관계를 잘 알고 있다. 최대한 백인 제작자를 괴롭히면서 물질적 이득을 얻어가려 한다.
마 레이니와 함께 녹음하는 밴드들의 모습 역시 상징적이다. 이들 대부분은 한푼 한푼이 절박하다. 백인 제작자의 무리한 요구에 굴복하곤 한다. 젊은 트럼펫 연주자 레비(채드위 보즈먼)는 다르다. 백인들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몫을 요구한다. 이런 레비의 언행은 다른 멤버들과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블루스만으로 귀가 즐겁다. 영화 상영시간이 93분에 불과해 많은 음악이 나오지 않는 점이 아쉽다. 2017년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은 비올라 데이비스와 보즈먼의 연기에 눈이 즐겁다. 두 사람은 다음 달 25일 열릴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 각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돼 있다. 미국 연예전문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와 버라이어티 등은 남우주연상 트로피가 보즈먼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사후 수상이라는 진기록이 또 한 번 세워질 수 있다.
※권장지수: ★★★(★ 5개 만점, ☆은 반개)
※로튼 토마토 지수: 평론가 98%, 관객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