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이 19일 대검 부장(검사장급) 회의를 열고 검찰 수사팀의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과 관련한 ‘위증 행위자’로 지목된 재소자 김모씨 기소 여부를 판단키로 했다. “(기소를 주장하는)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임은정 검사를 참여시키는 대검 부장회의를 통해 기소 가능성 등을 다시 심의하라”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에 따른 조치다.
조 총장대행은 다만 “공정성 담보 차원에서 일선 고검장들도 참여토록 하겠다”며 회의 참석 인원을 늘렸다. 박 장관 지휘를 수용하되, ‘우군’ 역할을 할 인사들을 끌어들여 회의결과 및 최종 결론을 둘러싼 논란을 사전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조 총장대행은 18일 ‘한명숙 전 총리 사건 관련 장관 수사지휘에 대한 입장’을 내고, “장관의 수사지휘서 지적을 겸허히 수용, 대검 부장회의를 신속히 개최해 재심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동수) 감찰부장과 임은정 연구관 등 조사 및 기록 검토 관계자들로부터 사안 설명과 의견을 청취하고 충분한 토론을 거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전날 박 장관의 지휘 취지를 그대로 따르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조 총장대행은 3월 22일 재소자 김씨의 공소시효 만료를 감안, 회의 일정을 19일로 못 박았다.
그러면서도 조 총장대행은 “대검에 근무하는 모든 부장검사만의 회의로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부족하다는 검찰 내·외부의 우려가 있다”며 “검찰 내 집단 지성을 대표하는 일선 고검장들을 참여토록 하겠다”고 공표했다. 장관이 재심의 협의체로 콕 집은 ‘대검 부장회의’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고검장 6명 추가 참석’이라는 변주를 가한 것이다.
검찰 안팎에선 이를 박 장관 수사지휘에 대한 불만의 표출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 5일 대검이 모해위증 의혹 사건을 무혐의 종결했을 때, 최종 책임자는 다름 아닌 조 총장대행이었다. ‘중립적 판단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상황에서, 박 장관이 ‘공정성’을 거론하며 이를 부정한 건 부당하다는 항의를 에둘러 표시했다는 것이다.
실제 조 총장대행은 입장문에서 “저의 책임 아래 ‘혐의없음 의견’으로 최종 처리됐고, 대검 각 부서 선임 연구관으로 구성된 ‘대검 연구관 6인 회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의사 결정을 했다”고 강조했다. 또 “대검은 합리적 의사결정 지침에 따라 공정성을 담보하고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도 했다. 임은정 감찰연구관이 결정 과정에서 제외됐다는 박 장관 지적엔 “(임 검사에게) 의견 표명 기회를 줬으나 스스로 참석을 거부했다”고 반박했다.
전략적으로 봐도 ‘고검장 참석 카드’는 묘수라는 평가가 많다. 이번 수사지휘를 두고 “법무부가 ‘조 총장대행이 잘 결정해 달라는 취지’라고 설명한 순간, 모든 책임은 조 총장대행이 지게 된 것”이라고 표현한 법조계 인사의 해석대로, 일단 조 총장대행으로선 딜레마에 빠졌을 공산이 크다. 재심의 협의체로 박 장관이 대검 부장회의를 특정한 건 ‘기소 의견 결정’으로 유도하려는 지휘로 볼 소지가 다분하다. 한동수 감찰부장과 이종근 형사부장과 이정현 공공수사부장 등 친정부 성향 인사들이 포진한 대검 부장단을 고려하면 ‘기소’ 방향으로 다수 의견이 모일 가능성이 적지 않은 탓이다.
조 총장대행으로선 그런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회의 결론을 따르자니 대검의 종전 집단 결정을 한순간에 부정하는 것인 데다, 최종 결정자로서 본인의 판단마저 번복하는 꼴이 돼 리더십엔 큰 상처가 남는다. 뻔히 예상되는 검찰 내부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물론 대검 부장회의 결정에 구속력이 없는 만큼, 조 총장대행이 정반대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건 아니다. 지난해 11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직무배제 조치를 취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향해 “한 발만 물러나 달라”고 반발했고, 지난달 검찰 인사 과정에서도 법무부에 “핀셋 인사를 중단해 달라”며 나선 모습을 볼 때 이번 역시 ‘소신’ 행보를 할 것으로 점치는 관측도 많다. 다만 이 경우엔 박 장관뿐 아니라, 정권과도 대립하는 분위기가 된다는 게 변수다. 차기 검찰총장 유력 후보로서의 입지가 줄어드는 점도 그의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결국 조 총장대행이 대검 부장회의 멤버로 고검장 6명을 전격 합류시킨 건, 고심 끝에 나온 ‘신의 한 수’로 평가된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검사는 “조 총장대행으로선 기존 결정이 그대로 유지되길 바랄 것이기에, 회의 주재자로서 고검장들 의견을 대폭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혐의 종결’을 번복하지 않아도 될 명분과 외양을 갖추게 됐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