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만에 등판한 北 최선희…대미협상 신호탄?

입력
2021.03.1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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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 '미국통'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긴 침묵을 깨고 등장해 조 바이든 미국 새 행정부의 태도 변화를 압박했다. 내용은 강경했지만 대미 실무협상을 담당해온 최 제1부상의 활동 재개가 미국을 향한 북한의 대화 제스처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 제1부상은 18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에서 "이미 미국의 대조선(대북) 적대시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조미(북미)접촉이나 대화도 이뤄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앞으로도 계속 미국의 접촉 시도를 무시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싱가포르나 하노이에서와 같은 기회를 다시는 주지 않을 것"이라며 당분간 북미 정상회담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강조했다.

이틀 전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대남 담화 말미 미국을 짧게 언급하긴 했지만,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만 특정해 공식 입장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 제1부상은 미국 측 태도를 비판하면서도 "서로 동등하게 마주 앉아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했다. 김 부부장과 달리 자극적 표현을 삼가며 대화 재개에 대한 희망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지난 8개월간 잠행해온 최 제1부상이 다시 목소리를 낸 것은 북미 간 밀고 당기는 장외 협상이 시작됐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에도 건재한 듯 보였던 최 제1부상은 지난해 7월 담화를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춰 다양한 추측을 낳았다. '3개월간 혁명화 교육(강제노역)을 받았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1월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최선희는 미국 대선 후 대미정책 수립에 전념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일축했다.

올 초 당대회에서 최 제1부상의 당내 지위가 중앙위 후보위원으로 강등된 것도 대미·대남관계에 대한 북한의 낮아진 기대치를 반영한 것일 뿐 실제 역할과 위상에는 변함이 없다는 분석이 많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최선희가 대미정책을 담당하고 북미 관계에 대한 입장을 대외에 발표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최 제1부상이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북미 협상의 핵심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다.

강유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