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소식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다시 한번 느낀 일대 사건이었다. 그런데 도시와 주택을 연구하는 필자에겐 수상 소식보다 영화 속 인물들이 사는 공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개인적 불운과 사회적 결함이 겹쳐 저소득층으로 추락한 한 가족의 이야기가 던지는 메시지는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그중에서도 기택의 네 식구가 사는 반지하 방은 가장 선명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언제부터 반지하에 살게 됐고, 언제까지 반지하를 거주 공간으로 인정할 것인가. 최근 한 방송사의 트로트 오디션을 통해 일약 스타가 된 한 가수가 반지하에 살면서 "저렴하고 넓어서 좋다"고 했을 때 의문은 더욱 깊어졌다. 2021년 현재 반지하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공간이니 그대로 둘 것인가.
오랜 세월 인류에게 지하는 삶의 공간이기보다 죽음의 공간이었다. 빛이 없다는 측면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빛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한다면 어두운 지하는 머물고 싶지 않은 공간임은 확실하다. 그래서인지 지하에 감옥을 만들거나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어 지하로 보냈다. 지하는 눈에 잘 띄지 않으므로 더럽고 추한 것들도 모두 지하에 묻었다. 하수도나 정화조가 좋은 예다. 그런데 이렇게 천대받던 지하는 건축 기술과 설비 수준의 향상으로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도시 저소득층이 언제부터 지하에 거주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1848년 제정된 영국의 공중위생법을 보면 이미 지하 거주가 매우 일반적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 법 67조는 특별한 조건을 만족하지 않으면 지하에 거주하는 것을 금지한다. 지하주거공간이 합법이려면 천장고가 최소 7피트(약 2.1m)가 돼야 하고, 배수처리가 잘돼야 한다. 또한 모든 부분으로부터 지면이나 도로까지 최소 2피트 6인치(약 85㎝) 떨어져야 한다. 이 외에도 최소 9평방피트(약 0.8㎡) 크기의 외부로 개방된 창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 등 지하 거주가 가능한 공간의 상세한 기준이 명시돼 있다.
위의 조항을 보면 산업혁명으로 인해 도시 집중이 심화된 19세기 영국의 도시에서는 지하 주거가 일반적이었고, 당시 유럽에서도 일종의 반지하가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미 170여 년 전, 유럽의 반지하는 환기나 배수 등의 주거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반지하 역사는 어떠했을까.
우리나라에서 반지하가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1970~80년대다. 단독주택에서 기존에 창고나 방공호로 쓰던 공간을 저렴한 셋방으로 내놓기 시작하면서 반지하가 가난한 도시서민의 주거 대안이 됐다. 1985년 주택총조사를 보면 단독주택이 전체의 77.3%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중 대부분은 양옥이라고 부르던 2층 주택이었다. 단독주택은 보통 마당에서 1m 정도 계단을 올라가서 1층이 시작되는데, 습기나 침수로부터 주거 환경을 지키고 유사시 지하 대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구조였다. 그러다가 경기 호황으로 인구의 도시 집중이 가속화되고 주택 부족도 심화되자 많은 단독주택 지하실은 셋방으로 개조됐다.
반지하 주거가 급격하게 확산된 것은 다세대·다가구 건설이 본격화되고 지상 노출 규제가 완화되면서부터다. 1984년 ‘다세대주택’이 합법화됐고 그해 12월에는 지하층이 지상으로 노출될 수 있는 높이가 천장고의 3분의 1에서 2분의 1로 완화됐다. 의무적으로 땅에 묻히는 깊이가 낮아지면서 통풍과 환기에 조금 더 유리해진 것이다.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1990년 ‘다가구주택’도 장려되면서 반지하는 급증했다. 그 이전에도 도시에서는 단독주택에 여러 가구가 세 들어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불법이었으나 도심 주택난 해소를 위해 합법이 됐다. 1973년 이래 지하층은 층수에서 제외됐고 1981년부터는 용적률 산정에서도 빠졌으므로 반지하를 만들어 세를 주면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꼼수로 등장한 반지하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민의 주거 대안으로 상당한 역할을 하게 된다. 지상층보다 집세가 저렴하므로 넓은 면적이 꼭 필요한 저소득층에는 요긴한 대안이 된 것이다. 통상 옥탑방은 면적이 작아 1~2인 가구용인데 비해 반지하는 상대적으로 큰 규모가 많아 식구가 3~4명 되는 가구들도 살 수 있었다. 집주인은 추가로 월세 수입을 올릴 수 있어서 좋고 세입자는 넓은 집을 저렴하게 살아서 좋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대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공짜 점심’은 아니었다.
반지하 주거의 가장 큰 문제는 취약한 위생 환경이다. 우선 지상층에 비해 곰팡이나 결로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아 거주자의 신체적 건강을 위협한다. 특히 물을 많이 쓰는 부엌이나 화장실은 곰팡이 위험이 높다. 이는 본질적으로 반지하가 외기에 접하는 공간이 적어 자연 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0년대 이전에 지어진 다가구주택의 반지하는 정화조와 하수관 깊이가 낮아 화장실이나 부엌에서 발생한 오수의 배출이 잘 안 되는 등 상황이 더 좋지 않다.
범죄나 위기 상황에도 매우 취약하다. 창문이 도로와 같은 높이에 있어 사생활 침해 가능성도 많다. 행인이나 불량한 이웃이 몰래 들여다볼까 봐 늘 커튼을 닫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반지하 생활은 정서적으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또한 큰비가 오면 하수가 잘 빠지지 않거나 역류하기도 한다. 더 심하면 도로가 침수되면서 창문을 통해 물이 들어올 수도 있다. 지하라는 특성상 불이 나도 연기가 잘 안 빠지니 지상에 비해 몇 배 위험하다.
이제 반지하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구조할 때다. 소득 3만 달러,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이라 자부하면서 여전히 수십만 가구가 반지하주택에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주택이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일도 그만둬야 한다. 그런 정도의 판단력으로는 반지하에 사는 많은 국민을 구해낼 수 없다.
우선 단기적으로 반지하의 주거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단열설비나 환기시스템을 갖추는 일에 공공이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거주 가능한 반지하 공간의 기준을 정비해 이에 미달하는 반지하주택은 거주를 금지하고,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반지하 주거를 퇴출시키기 위한 정책들을 단계별로 시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적절한 인센티브를 통해 비주거용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작년 4월부터 매입임대 반지하를 공간복지시설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민간에서도 기존의 반지하 주거 공간을 사무실이나 매장으로 리모델링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시도를 늘리고 있다. 비주거용인 경우 사람이 지하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지 않아 주거용에 비해 훨씬 바람직하다. 또한 취사나 샤워도 하지 않아 습기 발생도 매우 적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사용하던 공간을 버리지 않고 도심 활성화를 촉진하는 용도로 활용함으로써 노후 시가지 재생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용도지역제나 건축 규제에 얽매이지 말고 반지하의 용도 전환을 적극 유도해야 보다 많은 국민을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경제논리로 반지하 주거를 허용할 것인가. 안전 기준에 맞지 않는 제품은 생산을 금지하듯이 이제는 집도 시대에 맞는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더는 값싸다는 이유로 반지하에 살면서 건강을 해치게 놔둬선 안 된다. 그들을 구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