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인의 춘분

입력
2021.03.18 22:00
27면

아이고, 저걸 어쩌나. 하늘로 올라가는 커다란 열기구 끝에 한 남자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며칠 전 열기구를 타고 멕시코의 피라미드 유적을 구경하던 관광객에게 일어난 아찔한 사고 장면이었다. 더 이상 열기구가 떠오르지 못하게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줄을 잡아당겨준 것도 다행, 힘이 빠져 떨어지던 순간 열기구와 연결된 줄을 간신히 낚아챈 것도 기적이었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사람들 사이로 무사히 착륙하는 것까지 다 보고 나니, 이런 해프닝 같은 해외 토픽이 얼마만인지 새삼 새로웠다. 믿거나 말거나 싶은 엉뚱한 사건사고가 많던 국제 뉴스가 ‘코로나’와 ‘확진자’ 같은 심각한 단어만으로 주르륵 채워진 게 벌써 일 년이다.

멕시코에 피라미드라니, 저 뉴스 잘못 올라온 거 아냐? 혹시 이런 생각이 스쳤던 이들은 없었을지도 궁금해졌다. 피라미드는 모래바람이 휘휘 몰아치는 이집트 사막에만 있다고 떠올리는 이들이 워낙 많은지라,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고 나면 정글 한가운데에서 만나는 다양한 문명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참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어찌 보면 지극히 비생산적인 활동인 여행에서도 “내가 알던 세상이 다는 아니었구나!” 이런 작은 느낌표 하나는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마야인들이 중앙아메리카 곳곳에 지어 놓은 피라미드에서도 제일 유명한 건 멕시코 치첸이트사에 있는 쿠쿨칸의 신전(Temple of Kukulcán)이다. SF 영화나 소설에서 인류 종말을 예언하는 증거로 자주 등장했던 ‘마야 달력’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터. 어느 시대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자연현상에 대해 두려움과 호기심을 가지고 그 해답을 찾아 왔는데, 마야인들의 선택은 천문대를 세워서 끝없이 태양과 달과 금성을 관찰하고 기록을 모으는 것이었다. 쿠쿨칸의 신전 역시 건물 자체가 하나의 달력, 91개씩 있는 동서남북의 계단에다 정상의 계단 하나를 더하면 우리가 쓰는 일년의 날수인 365개가 된다. 맨눈으로 하늘을 살펴보고는 오늘날과 비교해도 오차가 거의 없는 태양력을 계산해 낸 것이다.

20일,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절기인 춘분은 우리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도 꽤나 의미 있는 날이다. 길고 어두웠던 밤을 따뜻하고 환한 낮이 조금이라도 이기려는 교차의 순간, 사람들은 앞으로 더 강해질 태양의 기운에 희망을 걸지 않나 싶다. 천 년도 훨씬 전에 이 피라미드를 지은 마야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춘분의 늦은 오후가 되면 계단식으로 만든 피라미드의 그림자가 북쪽 계단 난간에 드리워지는데, 이게 계단 끝의 뱀 머리 조각과 절묘하게 이어지면서 구불구불 뱀이 땅으로 내려오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쿠쿨칸이 마야어로 ‘깃털이 달린 뱀’이라는 뜻이니, 신전 주인의 강림인 셈이다.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춘분 시기에 맞추어 신성한 존재가 내려오는 모습을 표현한 건 그저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는 봄이 시작될 시간, 아니 세상 모든 것에 새봄 같은 생명의 기운이 깃들어야만 할 시간이다. 내일부터 하루하루 길어질 태양의 시간만큼 부디 죽음처럼 어두운 바이러스의 기운은 벌벌 기어 나가길 빌고 또 빌어본다. 매년 춘분이면 피라미드 아래에 빼곡하게 몰려들어 뱀의 그림자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과 한마음으로 말이다.

전혜진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