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오갈 데 없어진 나에게,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 것을 제안한다. 그 집에 얹혀 살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는 증발하듯 사라져버린다. 마지막 행적이 담긴 CCTV에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두 남자가 친구를 엘리베이터에 태우는 장면이 찍혔는데, 정작 두 남자는 심부름센터 직원으로 친구의 요청에 따랐을 뿐이라고 증언한다. 주변 사람들은 친구의 실종 덕에 자연스레 그 집에 눌러앉을 수 있게 된 나를 범인으로 의심하고, 나는 말이 없는 전화 한 통을 받게 되는데…
편혜영의 신작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에 실린 단편 ‘리코더’의 일부 줄거리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결말로 향해가는 과정 내내 서스펜스가 유발된다. 그러나 사건의 해결이나 비밀의 폭로가 이야기의 핵심은 아니다. 이 서스펜스를 통해 궁극적으로 작가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삶이라는 미스터리 그 자체다.
‘어쩌면 스무 번’에는 ‘리코더’를 비롯해 이처럼 우리가 끝내 해결하지 못하는 삶의 문제를 그린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2017년 장편소설 ‘홀’로 한국 최초로 최고의 추리 호러 서스펜스 작품에 수여하는 미국의 셜리잭슨 상을 수상한 작가의 최신작이다. 2000년 등단한 이후 22년간 11권의 책을 내며 쉼 없이 달려온 작가의 관록이 한층 무르익었다.
소설에서 긴장과 불안을 유발하는 것은 멀리 있는, 낯선 존재가 아니다. 가장 가깝기에 동시에 가장 위협적인, 가족 같은 존재다. 표제작인 단편 ‘어쩌면 스무 번’의 부부는 치매 아버지와 함께 산골로 이사한다. 주위에는 옥수수밭만 가득하고 가장 가까운 이웃집도 삼백 미터 떨어져 있는 외진 곳이다. 어느 날 보안업체 직원들이 부부를 찾아오고, 이들은 부부의 집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을 언급하며 자신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압박해온다.
재산과 목숨을 지켜주겠다고 자부하지만 실은 고객이 더 위험한 환경에 처해 있어야만 자신들의 서비스를 팔 확률이 높아지는 보안업체. 이는 치매 아버지가 무력해야만 이를 빌미로 형제들로부터 돈을 타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부부의 상황과도 연결된다.
“장인이 돌아가시면 아내는 일정한 몫의 유산을 받게 되지만, 빚을 상환하면 적은 액수가 남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능한 유일한 목돈이자 밑천이었다. 시간이 걸린다는 게 흠이었다. 장인이 살아 있으면 매달 푼돈이 꾸준히 들어올 터였다. 정당한 몫인데도 굴욕감이 든다는 점이 문제였다.”('어쩌면 스무 번')
끔찍하면서도 애틋한, 두려우면서도 고마워해야 하는 가족이라는 존재는 끝내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가족은 삶이라는 곤경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게다가 죽거나, 사라지거나, 미쳐버림으로써 이들에게 연유를 따져 물을 수도 없게 되었을 때 이야기는 영원한 미궁으로 빠져든다.
“자기를 죽일 줄 알았던 형이 자신을 살린 것을 알고 운오는 구역질을 했다(…) 형은 늘 운오에게 말했다. 죽을래? 눈을 치뜨며 입술을 비죽거리고 아니꼬운 표정으로 주먹질을 해댔다(…) 형이 자신을 살린 걸 생각하면 언제나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호텔 창문’)
자기를 끔찍하게 괴롭혔던 사촌형이 정작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고 죽는다거나(‘호텔 창문’), 남편이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남긴 채 실종된다거나(‘플리즈 콜 미’), 잘 지내는 줄만 알았던 어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가위를 휘둘러 상해를 입힌 뒤 정신을 놓아버린다.(‘좋은 날이 되었네')
난데없는 따귀처럼 보이는 이 같은 곤경들은 모두 과거의 일과 연결돼 있다. 그러나 과거에 벌어졌던 특정 사건 하나를 꼬집어 문제의 원인이라 지목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를 둘러싼 죄책감, 무관심, 오해들이 뒤섞여 현재의 불행을 만들어낸다.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것으로 충분했다. 정확히 모르는 채로 나는 막연히 어머니의 삶은 소박하고 규칙적이며 질서가 잡혀 있다고 믿어왔다.”(‘좋은 날이 되었네’)
작가는 책 출간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명확하고 설명이 가능한 인과를 오히려 의심하는 것 같아요. 대체로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일인 거지.” 명확한 인과와 설명이 불가능한 불행.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삶이라는 미스터리에 대한 유일한 답일지 모른다. '어쩌면 스무 번'은 그 미스터리에 대한 편혜영식 답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