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출범 12년 만에 최대 위기에 빠졌습니다. LH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고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조직의 몸집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 꼽히고 있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1일 LH에 대해 "해체 수준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는 혁신안을 추진하겠다"고 한 뒤, LH를 기능별로 쪼개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LH는 원래 한국토지공사(토공)와 대한주택공사(주공) 두 회사가 '합체'해서 만들어졌는데요. 지금도 전신인 두 회사의 업무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상태입니다. 토공의 업무였던 ①신도시 건설, 경제자유구역 등 특별구역 조성 ②도시재생사업과 주공의 업무였던 임대아파트 건설·공급·관리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9년 통합 당시만 해도 "십수 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통합 논의를 드디어 이뤄냈다"는 평가와 함께 두 회사의 통합은 잘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는데요.
두 기업을 통합하자는 논의는 생각보다 오래 전인 전두환 정부 시절부터 존재했다고 합니다.
한국토지공사는 1975년 설립된 토지금고를 기원으로 1979년 한국토지개발공사로 확대 개편 후 1996년 한국토지공사로 개칭했습니다. 각종 산업단지와 택지 등의 개발 계획을 담당했고, 토지공사 개칭 이후는 토지 임대·관리 등도 맡았습니다.
대한주택공사는 대한주택영단을 기원으로 1962년부터 수많은 '주공아파트' 건설을 담당했으며, 대규모 주택단지의 민간 건설이 활성화한 이후로는 공공임대주택 사업에 주력했습니다.
이런 두 기관의 통합이 처음 제안된 것은 1980년 말 감사원에 의해서였습니다. 1981년 2월 14일자 기사를 보면 "건설부 산하에 기관이 너무 많고, 업무와 기능이 중복되는 경우가 있어 토지개발공사를 주택공사에 흡수시키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건설부 각 국의 맹렬한 반대로 실현이 불가능했다"고 돼 있습니다.
1983년 4월에는 토지개발공사 직원이 '재벌 토지 재매입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토개공에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통합론이 잠시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정부가 각 기업들에 비업무용 토지를 토개공에 매각하도록 했는데, 일부 기업이 직원이나 가족들로 하여금 이를 위장해 재매입하도록 했고, 토개공 부산지사 직원이 이를 도왔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의정동우회 소속 조형부 의원은 국회 건설위원회 질의에서 "주공과 토개공이 투기에 속수무책인데 흡수 통합해 '주택청'을 신설하는 것이 어떠냐"고 주장했습니다.
1984년 전두환 정부는 '부동산 투기 억제 종합 대책 내역'을 발표하면서 '택지개발 및 주택건설 관련 기관의 확대 개편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주공과 토개공을 통합·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제시했습니다.
주공과 토개공의 통합 논의는 김영삼(YS) 정부 시절인 1993년에 다시 나왔습니다. 기존 통합 논의가 '투기를 억제하고 정부의 주택 정책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였다면, 90년대부터는 공기업 민영화, 경영 효율화 등의 논거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다만 김영삼 정부는 통합안은 일단 보류하고, 주공의 택지 개발은 자체 소요로 제한하는 한편 토개공은 도시 재개발 기능을 없애는 기능 조정만 진행했습니다. 이후 토개공의 명칭은 토공으로 바뀌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대통령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토공과 주공의 통합을 과제로 내걸었습니다. 2001년까지 두 회사를 합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다만 두 기관 모두 재무구조상 부실 규모가 너무 커, 오히려 통폐합 이후 운영상 문제점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나왔습니다.
주공이 1993년 인수한 건설사 한양 등 부실 자회사를 정리하는 절차를 거치고, 2001년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법안'을 냈습니다.
하지만 두 기업 조직 간 갈등이 불거졌고,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과 자민련도 "조직 간 갈등이 극심한 데다 거대 부실기업만 만들 우려가 있어 졸속 처리할 일이 아니다"라며 반대해 법안 통과에 실패했습니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2003년 공식적으로 통합을 보류했습니다.
"두 공사가 그동안 통합을 전제로 구조 조정을 진행해 인력과 조직이 상당 부분 축소됐고, 행정수도 이전과 수도권 신도시 건설, 개성공단 개발, 국민임대주택 100만 가구 건설 등 대형 사업이 코앞에 예정돼 있는 만큼 두 공사가 이들 사업을 나눠 맡아 추진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000년대 이후 주공과 토공의 사업 범위가 점점 겹치면서 두 기업은 사업권을 놓고 경쟁을 벌였습니다.
2004년에는 신행정수도(세종시) 이전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주공은 주택공급과 택지개발, 토공은 상업용지 조성 등 자신의 '주력' 부문을 사수하고 상대 사업 분야까지 넘보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2007년에는 토공이 임대주택 건설·공급·관리 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주공은 이를 막기 위해 국회의원을 상대로 로비전을 벌였습니다.
결국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 주공과 토공을 통합하는 안이 재차 강력하게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공기업 통폐합을 통해 구조 조정과 경영 효율화를 꾀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주공은 사실상 토공을 흡수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이 통합에 우호적이었습니다. 토공이 개발한 토지를 매입해 집을 지으면서 낭비한 비용을 절감해 분양가를 내릴 수 있고, 과도한 수주 경쟁과 문어발식 사업으로 인한 대규모 미분양 사태 등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을 강조했죠.
반면 토공은 노조를 중심으로 "부채규모 100조 원이 넘는 거대 공룡기업이 탄생한다"며 반대했습니다.
주공의 통합 주장은 공적 기능과 경쟁력을 잃으면서 위기에 처하자 이를 피하기 위한 생존 전략일 뿐이라며, 주공과 토공이 합쳐지면 오히려 경쟁 체제가 사라져 부패가 심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주장은 12년이 지난 지금 LH의 분리를 주장하는 쪽이 제시하는 논리와 비슷합니다.
결국 두 공사는 2009년 5월 한국토지주택공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그해 10월 정식으로 통합됐습니다.
하지만 통합 이후로도 문제가 지속됐습니다. 우선 통합공사의 본사 이전지를 어디로 하느냐를 놓고, 통합 이전 주택공사의 이전지로 예정했던 경남 진주시와 토지공사의 이전지였던 전북 전주시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전북은 LH 사장을 포함한 경영기획파트 직원 24.2%를 전북으로 이전하고 나머지는 경남으로 가는 '분산 배치론'을 내세운 반면, 경남은 일괄 이전을 원했습니다.
김완주 당시 전북지사는 LH를 잃을 수 없다며 삭발식까지 벌일 정도로 강경한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이 논쟁은 2011년 5월 LH 전체가 경남 진주시로 이전하는 대신 국민연금공단이 전주로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MB 정부가 내세운 통합의 주요 이유였던 '구조조정과 효율화'가 무색하게, 조직 비대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세종시와 각종 혁신도시, 국민임대주택과 보금자리주택, 4대강 사업 등 굵직한 국책 개발 사업은 모두 LH의 몫이자 짐이었는데요. 통합 당시 7,300여 명이던 직원 수는 현재 9,500여 명까지 늘어났습니다.
개혁의 도마 위에 오른 LH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국내 공공 주택사업의 80%를 차지하는 비대함이 문제라는 쪽은 분산을 요구합니다.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위원은 "LH의 업무를 본래 목적에 맞게 집중시키고 지방 도시개발공사 등의 역량을 키워서 경쟁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지방에도 주택 공급을 담당하는 공기업이 있기 때문에 LH가 남아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라며 해체도 대안이라 했습니다.
반면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LH는 이미 3기 신도시뿐만 아니라 택지개발, 지역개발, 산단·공단개발, 도시재생, 해외 신도시 개발 등 너무나 많은 중요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며 "웬만한 지방도시공사의 수십 배에 달하는 조직을 갑자기 해체할 수는 없다"고 반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