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격차 이게 맞아? 보궐선거 흔드는 ARS 여론조사의 함정

입력
2021.03.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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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정말?”

여론조사업체 에스티아이의 4ㆍ7 서울시장 보궐선거 가상 양자대결 결과가 나온 지난 14일 정치권 일부에선 이런 얘기가 나왔다. 12, 13일 실시해 발표한 조사 결과는 ‘박영선 33.1% 대 오세훈 51.8%’와 ‘박영선 32.3% 대 안철수 53.7%’. 더불어민주당에 불리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투기 의혹 악재가 반영됐다고는 하지만, 각각 18.7%포인트, 21.4%포인트라는 격차는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SBSㆍ넥스트리서치가 13일 실시해 14일 공개한 조사 결과는 달랐다. ‘박영선 35.0% 대 오세훈 42.3%’와 ‘박영선 33.6% 대 안철수 45.4%’. 격차는 각각 7.3%포인트와 11.8%포인트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진행한 조사인데도 두 조사의 지지율 격차가 2, 3배에 이른 것이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지만, 이처럼 조사 방식·조사 기관별 결과가 오락가락해 혼란을 키우고 있다. 여론조사가 민심을 투명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왜곡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17일 한국일보가 지난 12~14일 서울시민을 상대로 조사, 공표된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 결과 4건을 살펴본 결과, 조사 방법에 따라 지지율 격차가 크게 엇갈렸다.

여야 후보 격차, 조사 방식에 따라 두 배 차

녹음된 기계음이 질문하는 자동응답(ARS) 방식 여론조사에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오세훈 국민의힘·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중 누구와 1 대 1로 맞붙어도 20%포인트 안팎 뒤지는 것으로 나왔다. 문화일보ㆍ리얼미터 조사 결과는 ‘박영선 37.4% 대 오세훈 54.5%’와 ‘박영선 37.8% 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55.3%’로, 여야 후보 차이가 각각 17.1%포인트, 17.5%포인트였다. 에스티아이 조사 역시 ARS 방식이다.

훈련받은 면접원이 실시간 육성으로 질문하는 전화면접 조사에서는 여야 후보 간 격차가 ARS 조사의 절반 수준인 7~12%포인트로 줄었다. 13일 실시해 15일 발표한 조선일보ㆍ칸타코리아 조사 결과는 ‘박영선 34.2% 대 오세훈 46.5%’와 ‘박영선 33.8% 대 안철수 45.2%’로 나타났다. SBSㆍ넥스트리서치 조사도 전화면접 방식이다.

어르신은 많이, 청년은 조금 조사하는 ARS

ARS 조사에서 유독 야권 후보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오는 이유는 뭘까. 표본조사인 여론조사는 표본의 연령ㆍ성별 인구 구성비를 실제 유권자 분포와 비슷하게 맞추기 위해 응답자 수를 연령ㆍ성별로 배분하는 ‘목표할당 사례 수’를 둔다. 그러나 ARS는 응답률이 극히 낮아 연령ㆍ성별 목표할당 사례를 채우지 못할 때가 많다.

특정 연령 쏠림 현상도 두드러진다. 에스티아이 조사를 보면, 60세 이상은 목표할당 사례가 272명인데, 이보다 23.5%나 많은 336명을 조사했다. 반면 18~29세 응답자는 목표는 194명인데, 실제 조사한 건 30.9% 적은 134명이었다. 문화일보ㆍ리얼미터 조사도 60세 이상은 목표(272명)보다 19.5% 많은 325명을 조사했고, 18~29세는 목표(194명)보다 24.2% 적은 147명만 조사했다.

전화면접은 할당목표에 훨씬 근접했다. 조선일보ㆍ칸타코리아 조사는 60세 이상은 220명(목표치 215명), 18~29세는 156명(목표치도 156명) 조사했다. SBSㆍ넥스트리서치 조사도 60세 이상은 268명(목표치 269명), 18~29세는 199명(목표치 196명) 조사해 목표할당 사례 수에 가까웠다.

“가중치 둬 사후 보정하면 된다? 두 번 왜곡 효과”

고령층 여론이 과잉 반영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에스티아이 관계자는 “이 정도 차이는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허용하는 기준 범위 내이고, 통계 산출 시 인구 비율에 따른 가중치를 적용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해명했다. 왜곡 가능성을 줄이려 나름의 ‘사후 보정’을 한다는 것이지만, 정확성 우려는 남는다.

여론조사 방법론 전문가인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전화면접 조사도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ARS가 더 부정확하다는 것이 학계 통설”이라며 “ARS 조사는 응답자가 강성 지지층 혹은 반대층일 가능성이 큰데, 이처럼 편향 가능성이 있는 결과에 가중치까지 주면 두 번 굴절되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왜곡된 설문조사 결과는 정치권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고, 유권자 판단에 영향을 줄 우려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ARS 조사는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여론조사 업계에 따르면, 전화면접은 1명 조사에 1만~1만5,000원이 들지만, ARS 조사 비용은 1명당 2,000~3,000원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조사 결과가 인용되는 빈도에는 큰 차이가 없다 보니 ARS 조사 방식을 택하는 업체가 늘어난다. 여론조사업체 한국리서치의 김춘석 전무는 “ARS도 기업 마케팅이나 시장 조사, 공표하지 않는 정당의 내부용 여론조사에서는 충분히 쓰일 수 있지만, 선거 여론조사에 활용되면 정치와 민심을 왜곡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 관계자는 “ARS 조사에 대해 어떤 우려가 있는지는 알지만 과잉규제 부작용도 크기 때문에 당장 제도 변경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각 여론조사업체 홈페이지 등을 참고하면 된다.

이성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