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가해 멈춰달라는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의 호소

입력
2021.03.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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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가 17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지금까지 여성단체들의 기자회견에서 입장문 대독 등의 형식으로 심경을 전했던 피해자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 자신의 입장을 전달한 것은 처음이다.

신상 노출에 대한 부담감,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맞물린 시기적 민감성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이날 용기를 낸 것은 박 전 시장과 여권 일부 지지자들의 2차 가해가 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이날 “초유의 2차 가해에 직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피해자는 박 전 시장 사망 이후 지속적으로 2차 피해에 시달려 왔다. 1월 한 친여권단체 대표는 피해자를 무고 및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고발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책임도 무겁다. 사건 직후 여러 여성 의원들은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불렀고, 우상호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 당내 경선이 진행되는 가운데 “우상호가 박원순이라는 마음가짐”이라고 박 시장을 두둔하기까지 했다.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부르는 데 관여한 의원들 상당수가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민주당의 이런 애매한 태도 때문에 피해자의 고통과 절망이 얼마나 깊어졌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피해자에 대한 진솔한 사과와 2차 가해자에 대한 단호한 조치다. 양향자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오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선출직 공직자부터 2차 가해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 달라”며 피해자의 용서를 구했다.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민주당은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불렀던 인사들에 대한 징계를 검토하고, 당 지지자들에게는 더 이상 2차 가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이번 기자회견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면서 어정쩡하게 대처할 경우 피해자의 고통은 더욱 커질 것임은 분명하다. 권력형 성비리를 근절하겠다는 민주당의 진정성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