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 쌍산재, 대숲길...산수유 아니어도 구례는 봄

입력
2021.03.19 10:00
버스와 렌터카로 떠나는 구례 봄 여행


구례의 봄은 산수유로 시작된다. 코로나19로 축제를 취소했지만 산동면 산수유마을엔 여전히 꽃이 피고 사람이 몰린다. 구례는 산수유가 아니어도 볼 게 많은 지역이다. 대한민국 최고 명산으로 꼽히는 지리산과 섬진강, 쌍산재 고택 등 매력적인 관광지가 즐비하다. 산수유에 집착하지 않으면 오히려 호젓하게 구례의 봄을 즐길 수 있다.

봄과 겨울이 교차하는 노고단의 3월

대중교통을 이용한 시골 여행은 쉽지가 않다. 농어촌버스는 운행 횟수가 적고, 택시는 요금이 부담스럽다. 구례에서는 공영버스터미널에서 렌터카를 이용하는 게 답이다.

첫 목적지로 지리산 노고단을 선택했다. 이유가 있다. 지리산은 3개 도(전북·전남·경남)와 5개 시군(남원·구례·하동·함양·산청)에 걸쳐 있다. 노고단에서 시작해 삼도봉~반야봉~토끼봉~벽소령~형제봉~촛대봉~연하봉을 거쳐 천왕봉에 이르는 종주길은 단일 산 능선으로 국내 최장(25.5㎞)이다. 누구나 꿈꾸지만 험하고 길어서 마음먹기 힘든 도전의 길이다.

종주는 아니어도 지리산 능선까지 쉽게 오르는 방법이 있다.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 3대 봉우리로 꼽히는 노고단을 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화엄사나 천은사부터 등산을 했지만, 현재는 차량으로 성삼재휴게소까지 갈 수 있다. 휴게소에서 노고단 정상까지는 3.2㎞(왕복 6.4㎞), 산행 초보자도 두 세 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다.

성삼재휴게소에서 1시간가량 걸으면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한다. 잠시 쉬었다가 400m(약 10분)를 더 가면 지리산 종주길과 노고단 정상으로 이어지는 고개에 이른다. 이곳부터는 절차를 따라야 한다. 출입이 가능한 시간은 오전 5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국립공원공단 예약통합시스템(reservation.knps.or.kr)에 접속해 지리산 노고단 탐방예약을 한 후, 생성된 QR코드를 인증해야 입장할 수 있다.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100살 구상나무를 지나 노고단 정상(1,507m)에 서면 지리산의 비경이 펼쳐진다. 조정래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노고단을 일출과 운해가 빼어난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겨울 눈꽃, 봄 철쭉, 여름 원추리, 가을 단풍까지 사계절 내내 대자연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1,500m가 넘는 고지대라 3월 노고단엔 봄과 겨울 두 계절이 공존한다. 발 아래로 하얀 솜처럼 신비로운 구름이 바다를 이루다가 함박눈이 퍼붓기도 한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하얀 눈꽃이 겨울 동화처럼 황홀한 풍경을 연출하고, 그 너머로 구례의 들과 섬진강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광이다.




오스카 배우 윤여정의 '윤스테이'로 요즘 뜨는 구례

다음은 노고단 아래 천은사로 향한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소나무 숲길이다. 사찰 앞 천은저수지까지 한 바퀴 도는 코스는 건강 산책로다. 일주문 현판은 조선의 4대 명필로 알려진 이광사가 썼다. 물 흐르는 듯한 서체로 ‘지리산 천은사’라고 쓴 현판을 내건 뒤부터는 절에 재앙이 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섬진강대나무숲도 요즘 구례에서 뜨는 곳이다. 섬진강과 나란한 500여m 대나무 숲길을 걷는다. 초록을 가득 머금은 대나무 잎사귀가 강바람에 부딪히는 소리가 신선하다. 이따금씩 숨어 있던 새들이 인기척에 놀라 날아오른다. 잠시나마 자연과 하나가 된 듯 몸과 마음이 평온해진다. 까막정가든 앞에 넓은 주차장이 있다.


전남 민간정원 5호로 지정된 쌍산재는 tvN의 ‘윤스테이’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해주 오씨 고택으로, 주인인 오경영씨의 고조부의 호를 따서 쌍산(雙山)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한옥과 오래된 수목, 저수지가 어우러진 전통 정원을 거닐면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무릉도원이 이런 곳인가 싶다. 입장료 1만원에 전통차, 또는 커피 한 잔이 포함돼 있다.


구례를 여행하다 보면 구례군청, 산동면사무소, 산동면 반곡마을 등 여기저기에서 벽화를 발견할 수 있는데 모두 이강희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는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에 매일이 설레고, 작품 소재와 창작 의욕을 끊임없이 공급해주는 구례를 고향으로 둔 것은 행운”이라고 말한다. 그가 최근에 산동면 쌀 보관 창고에 그린 대형 벽화는 인기 포토존이 됐다. 진면목은 더케이 지리산가족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지현 이강희 초대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례의 별난 식당과 이색 숙소

특별한 맛을 체험하고 싶은 건 여행자의 본능에 가깝다. 구례에서 딱 들어맞는 곳을 꼽으라면 금요일에만 문을 여는 ‘금요순대’(구례읍 봉성로 111)다. 큼지막한 순대와 깊은 국물 맛이 조화를 이루는 순대국밥을 추천한다. ‘잼있는커피 티읕’(구례읍 로터리길 2-1)은 핸드드립 커피가 일품이다. 고소한 맛과 향의 ‘브라질 파젠디나 내츄럴’이 인기다.


숙박은 ‘노고단게스트하우스 &호텔’을 추천한다. 은행지점장을 그만두고 지리산을 선택한 정영혁 대표가 인생 후반전을 펼치는 곳이다. 지리산 여행자들은 이곳을 ‘지리산 베이스캠프’ ‘산티아고 순례길의 알베르게’ ‘지리산티아고’라 부른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인사말 ‘부엔 까미노(Buen Camino)'에서 이름을 딴 레스토랑에서는 지리산흑돼지(1만4000원) 요리를 판매한다. 투숙객을 대상으로 전용 차량을 이용한 지리산 노고단 여행 프로그램(1인 1만5,000원)도 운영한다. 숙박료는 2만 원부터다.



박준규 대중교통여행 전문가 blog.naver.com/saka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