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2주, 소통하니 그래도 웃게 된다

입력
2021.03.18 00:00
27면

학급 담임을 할 때면 해마다 카페, 밴드 등 온라인 소통 공간을 만들어 학급을 운영했다. 알림장, 가정통신문을 빠르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이렇게만 사용하면 삭막하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도 학부모들과 주고받았다. 이렇게 한 해를 살면 그 공간에 많은 이야기가 담겼다. 학년 말이면 그렇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를 모아 문집과 앨범을 만들었다. 한 해를 열심히 살아낸 우리 모두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3년 전에는 뜻 맞는 선생님들과 함께 학년·교과 밴드를 만들었다. 교사들의 온라인 소통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바일 환경에 적합한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이렇게 시작한 학년·교과 밴드에 교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입소문을 타고 밴드는 빠르게 퍼져나갔고 밴드를 관리하는 것도 일이 되었지만 재미와 의미가 모두 있는 일이라 힘든 줄 몰랐다. 지금도 그 밴드에서 교사들은 생각, 고민, 자료를 나누며 서로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교사로 살아오며 늘 이렇게 소통에 주저함이 없었는데 올해는 다르다. 학급 아이들을 처음 만난 날에 나를 소개하는 안내장을 하나 보내고는 2주가 지나도록 학부모들과 별다른 소통이 없었다. 아이들을 찍은 변변한 사진도 없다. 날마다 마스크를 쓴 채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이름마저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아이들 얼굴을 보려고 마스크를 벗는 급식시간에 한참 바라보곤 한다. 코로나 때문이다, 학교를 옮기고 적응하느라 그렇다, 학기 초부터 학부모의 오해에서 비롯된 민원으로 신경전을 벌이느라 학급운영에 필요한 경계를 세우는 과정이다라고 핑계를 찾아보았지만 거리감이 불편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급기야 오늘 아침에 가정통신문 앱을 열었다. 종이로 보내는 가정통신문을 온라인으로 대체하여 적극적인 소통을 하자는 취지로 도입했지만 가정통신문 전달용으로만 써야 할지, 적극적인 소통의 장으로 써야 할지 나부터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판단은 뒤로 미루고 아이들의 학교 이야기를 차분하게 써내려갔다. 코로나로 폐쇄되었던 도서실을 방역수칙을 지켜가며 개방해야 하고, 교실 밖 야외활동도 허용해야 한다는 이유도 설명했다. 주절주절 학교 이야기가 이어졌다.

글만 올리기가 밋밋해서 오늘 처음으로 찍은 아이들 사진을 몇 장 덧붙였다. 지난주에 도서실에 찾아가 책 고르는 방법을 배웠고, 오늘은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왜 그 책을 골랐는지 발표도 하고, 책을 손에 쥐고 사진도 찍었으니 책을 매개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라는 당부도 했다. 종종 학교 이야기를 전할 테니 아이들이 더 힘차게 학교의 하루를 열어갈 수 있도록 응원의 댓글을 부탁한다는 말로 글을 마쳤다.

수업이 끝나고 알림장을 적으려고 앱을 열어보니 학부모들의 댓글이 달려 있다. 학교의 소식을 꼼꼼하게 알려주어서 고맙다며 아이들과 나의 학교생활을 응원하는 내용들이다. 아이들에게 댓글을 모두 읽어주었다. 부모님이 보낸 응원의 메시지를 들으며 아이들은 마스크 너머로 눈웃음을 짓는다. 보는 나도 기분이 좋다. 코로나로 여전히 불편한 3월을 보내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학교에 적응해 가며 다시 알아간다. 3월에 학교에서 먼저 보아야 할 것은 문서가 아니라 사람이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안목에 따라 학교의 1년이 달라진다.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