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묘목이라도 심었으면 양반이야. 농지에 고물상이 들어서 있다니까.”
경기 시흥시 과림동에 들어서자마자 한산하던 도로 풍경이 확연히 바뀌었다. 포클레인이 눈에 띄었고, 폐기물 수집시설의 쓰레기 더미들이 철판으로 대충 칸을 나눠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고물상’ ‘철강’ 등이 적힌 간판이 속속 등장했다. 과림동에 거주한다는 이동헌(56)씨는 “이곳 농지의 90% 이상에 무허가로 고물상을 세우고 일한다”고 말했다. 농지를 고물상이나 건물부지 등 다른 용도로 이용하면 농지법 위반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한국일보가 17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투기 의심지역으로 발표한 경기 시흥시 과림동 일대를 찾아가 봤더니, 상당수 농지에 공장과 고물상, 재활용 폐기물 분류장이 자리 잡고 있었고, 빈 토지로 방치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다 접한 농지엔 컨테이너가 들어선 채 공사에 필요한 각종 장비와 자재들이 쌓여 있었다. 공장에서 용접 업무 중이던 인부에게 ‘이 일대가 농지라는 걸 아느냐’고 묻자 “사장님이 알지, 우리는 모른다”고 답했다.
고물상이 들어선 농지엔 초입부터 쓰레기가 너무 많아 접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포클레인 기사가 산처럼 쌓인 자재들을 모아 수거 차량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물상은 1년 넘게 농지를 점령한 상태였다.
과림동 주민 유금자(60)씨는 “주말농장하는 한두 곳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농지가 불법으로 고물상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과림동에 거주하는 이형구(55)씨도 “묘목이라도 심는 ‘최소한의 꼼수’도 없이 고물상 업체들이 사용하는 농지가 많다”며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3기 신도시 지역인 경기 고양시 창릉지구의 농지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비닐하우스가 모여 있는 덕양구 용두동 일대에는 경작물이 죽은 채 방치돼 있는 곳이 적지 않았다. 이름 모를 작물들은 이미 베어져 있거나 고개가 다 꺾여, 마른 가지들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도 “누가 와서 농사하는지 모르겠지만 저 땅은 이미 죽은 땅”이라고 말했다.
작물은 자라고 있지만 경작자와 소유주가 다른 토지도 발견됐다. 용두동의 농지에서 경작을 하던 A씨는 “2019년 5월쯤 신도시 계획이 발표됐는데, 발표 6개월 전에 토지를 산 사람이 많았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A씨가 경작하는 토지 소유주도 2018년 말 해당 토지를 사들였다.
덕양구 화전동 일대엔 등기부등본상 논으로 분류돼 있지만, ‘맨땅’이나 마찬가지인 곳도 여럿 있었다. 2017년 4명이 공동으로 사들인 토지는 원래 논이었지만, 매매 이후엔 흙으로 메꿔져 공터로 남아 있다.
고물상 부지로 쓰인 과림동 일대 땅은 이미 오염이 진행돼 향후 농지로 원상복구도 쉽지 않아 보인다. 주민 이동헌씨는 “고물상 특성상 폐유가 많고, 땅으로 이미 유해가스도 많이 침투됐을 것”이라며 “식물을 심고 경작하려면 땅을 완전히 갈아엎어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농지를 원상복구하려고 해도 고물상 업자들과의 충돌이 예상된다. 일자리를 잃는 고물상 측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B(45)씨는 “철강 1㎏에 9,000원이라고 치면 1톤 트럭 몇 대만 들어와도 하루에 수천만 원도 벌 수 있다”며 “업자들은 자리를 지키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말한다. 정부가 대대적인 조사에 나섰지만 농지 투기는 지금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요즘은 과림동 저수지를 넘어 계수동으로까지 사람들이 땅을 사러 뻔질나게 드나들더라”며 “어떤 소문을 듣고 땅 투기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