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상을 한국은 ‘한복(韓服)’, 중국은 ‘한푸(漢服)’라고 부른다. 한국은 1997년부터 ‘한복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한푸의 날’이 따로 없다. 이에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중국이 한복의 원조”라고 우겨온 애국주의 열풍에 불을 지필 새로운 땔감인 셈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문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우려와 함께 기념일 명칭이 학술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거침없던 중국 우월주의에 이례적으로 브레이크가 걸린 모양새다.
무형문화유산 전승자인 청신샹(成新湘)은 지난 6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매년 음력 3월 3일을 한푸의 날로 정해 공휴일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한푸는 중국 민족 문화의 가장 중요한 매개체”라며 “기념일을 통해 글로벌 시대 중국의 정체성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3월 3일은 중화민족의 시조로 알려진 ‘황제(黃帝)’가 태어난 날이다. 한푸를 부각시키기 위해 중국 역사의 뿌리까지 동원한 것이다.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 조회수가 열흘 만에 3억7,000만 건으로 치솟으며 온라인 공간이 달아올랐다. “한복과 기모노에 경종을 울리자”, “중국 문화의 새로운 꽃을 피워 충만한 자신감으로 미래를 열어가자” 등 동조하는 발언이 잇따랐다.
하지만 중국의 한푸 관련 업체가 2,115개에 달한다는 수치가 공개되면서 찬동 대열에 균열이 생겼다. 신규 등록 업체는 2010년 24개에서 2019년 900개로 10년 만에 37배 늘었다. “전통문화를 명분으로 기업의 잇속을 챙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의 다채로운 문화를 모두 기념일로 만들면 1년 365일이 부족하다.” 한푸의 날이라는 발상 자체가 볼썽사납다는 것이다.
한푸를 띄우려다 중국이 제 발등을 찍을 수도 있다. 56개 민족의 화합을 중시하는 중국이 한족의 문화만 과시하면 소수민족은 소외되기 때문이다.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로 서구의 비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중국이 내부 분열을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학계에서는 수천 년간 명멸한 많은 왕조의 복식이 서로 달랐던 만큼 한푸라는 정의 자체가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기념일의 대상이 불분명한 것이다.
이에 논란 많은 한푸의 날 대신 범위가 넓은 ‘중국 의복의 날’이 적당하다는 절충안도 등장했다. 정창링(鄭長鈴) 중국예술연구원 문화발전전략연구센터 부주임은 글로벌타임스에 “한푸의 대중화라는 패션 트렌드에 굳이 간섭할 필요가 없다”며 “기념일이 국민통합을 저해하고 반중 감정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자제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