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기민당, 코로나 탓 지방선거 참패... 복잡해진 '포스트 메르켈' 구도

입력
2021.03.15 20:30
14면
기민당 9월 총리 선출 앞두고 지방선거 2곳 참패
코로나19 와중 여당 정치인 부패 스캔들 치명타
라셰트 대표 정치적 시험대… 재집권 빨간불 켜져

독일에서 16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려는 전조일까. 14일(현지시간)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ㆍ라인란트팔츠주(州), 두 곳에서 실시된 지방의회 선거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 연합이 참패했다. 기민당 지지율도 붕괴돼 올 9월 연방의회 총선을 계기로 나라 수장이 바뀌는 ‘포스트 메르켈’ 구도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감염병 부실 대응과 여권의 부패가 표심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독일 공영방송 ARD에 따르면 이날 치러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회 선거에서 기민당의 득표율은 24.1%로 집계돼 5년 전(27%)보다 2.9%포인트 하락했다. 녹색당이 압도적 1위(32.6%)를 차지해 빈프레트 크레취만 현 주총리가 무난하게 임기를 연장하는 분위기다. 녹색당은 이전 선거(30.3%)보다 지지율을 더 끌어올렸다. 두 당의 격차도 3.3%에서 8.5%로 크게 벌어졌다. 10년 전만 해도 이 지역은 기민당에 40~50%의 표를 몰아주던 오랜 텃밭이었던 터라 이번 패배가 훨씬 뼈아팠다.

라인란트팔츠에서도 사회민주당(SPD) 소속 말루 드레이어 현 주총리가 사실상 승리를 확정지었다. 사민당 역시 35.7%의 득표율을 기록, 기민당(27.7%)을 넉넉히 따돌렸다. 원래도 사민당 강세 지역이지만, 양당 격차는 2011년 0.5%, 2016년 4.4%, 올해 8%포인트로 계속 커지고 있다. 민심이 여당 기민당에 계속 등을 돌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민당에 최악의 결과”라고까지 했다.

이른바 ‘마스크 스캔들’은 참패를 야기한 최대 요인이다. 최근 여당 정치인들이 정부의 마스크 조달 사업에 개입해 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기민당 연방의원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기사당 원내부대표는 탈당한 뒤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오랜 권력에 도취된, 고질적 부패”라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또 독일 전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차질을 빚고, 진단검사도 제때 이뤄지지 않는 등 당정의 부실한 감염병 대응도 패배에 한몫했다.

민심 이반이 확인된 만큼 기민당이 ‘메르켈 정당’이란 꼬리표를 떼어 내고 재집권에 성공할 지는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실제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이 1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민당ㆍ기사당 연합 지지율은 32%로 최근 1년 사이 가장 낮았다. 매체는 “이번 지방선거 패배는 기민당의 지지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메르켈 후임으로 유력한 아르민 라셰트 기민당 대표의 인기가 높지 않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올 1월 대표로 선출된 뒤 첫 성적표를 엉망으로 받아 들면서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독일 정가 안팎에선 라셰트 대표가 총리 출마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이란 예측까지 나온다. 반대로 사민당 등 야권에는 기회의 문이 넓어지는 만큼 차기 대권 지형도는 한층 복잡해질 전망이다.


김표향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