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홍콩 선거제도 개편은 홍콩 사틴 지역 구의원 레티샤 웡(黃文萱)에게 큰 절망을 안겼다. 제2야당 공민당의 신예인 웡은 앞으로 선거 참여 여부를 확신하지 못한다. 출마 가능성이 작다는 게 솔직한 그의 심정이다. 야당 활동을 사실상 막아버린 중국 정부를 향한 분노는 크지만, 그렇다고 야권의 위기를 극복할 뾰족한 해법도 없기 때문이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4일 중국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 선거제 개편을 확정한 후 동요하는 야권 분위기를 전했다. 홍콩 최대 야당인 민주당 로킨헤이(羅健熙) 대표 역시 동료들이 탈당하거나 정치판을 아예 떠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현 정치상황을 고려하면 합리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11일 통과된 개편안은 ‘애국자’가 아니면 야당 인사의 입후보 자격을 박탈하게 하는 자의적 조항을 신설했다. 야당의 의회 진입 통로인 직선제 의석 자체도 축소했다. 이렇게 되면 야권 인사의 출마가 어려운 것은 물론, 의회에 들어가더라도 야당으로서의 비판 기능이 사실상 봉쇄될 수밖에 없다.
선거제 개편은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범민주진영 인사 47명이 무더기 기소된 후 흔들리던 야권에 결정타가 됐다. 2019년 구의회 선거 압승 후 입법회(의회) 선거에서도 35석 이상을 노렸던 야권의 목표 달성은 당연히 불가능해졌다. 이럴 바엔 ‘무의미한’ 선거 출마보다 차라리 선거 보이콧(거부운동)에 주력하는 게 낫다는 자조까지 나온다. 신문은 “입법회 의석(90석) 중 직선제 의석 수가 현재 35석에서 20석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보도도 있다”며 야당의 위기를 단언했다. 이반 초이(蔡子強) 홍콩중문대 교수는 “(선거제 개편으로) 홍콩 야당은 기껏해야 압력 단체로 전락할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야당 인사에 대한 더 많은 단속과 체포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홍콩 의회가 사실상 찬반 거수기로 전락하면서 안 그래도 으르렁대는 서방과 중국의 대립 수위는 한층 높아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주요 7개국(G7)에 이어 영국은 13일(현지시간) 단독으로 선거제 개편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선거제 개편은 홍콩반환협정 위반”이라고 맹비난했다. 영국이 1997년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며 체결한 반환협정은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ㆍ한 국가 두 체제)’ 시행 약속이 포함돼 있다.
중국은 서방의 비판에 미동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사설에서 G7 성명을 ‘비열한 정치행위’라고 규정한 뒤 “중국이 성명을 무시하는 코웃음을 치면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한껏 비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