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해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의를 수용했다. 다만 2·4 부동산 대책의 기초작업까지는 마무리하라며 시한부 유예를 지시했다. 청와대는 당초 2·4 대책 추진과 국정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변 장관의 사퇴에 부정적 입장이었지만, 4·7 보궐선거를 앞둔 민주당의 '경질 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변 장관이 오늘 문 대통령에 사의를 밝혔다"며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변 장관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변 장관의 사의를 수용한 것이다. 변 장관은 이날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을 통해 대통령에게 사의를 전달했다. 지난해 12월 29일 취임한 지 2개월여 만이다.
문 대통령은 다만 “2·4 대책의 차질 없는 추진이 매우 중요하다. 변 장관 주도로 추진한 공공주도형 주택공급 대책과 관련된 입법의 기초 작업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정 수석이 전했다. 변 장관은 3월 임시국회에서 2·4 부동산대책의 후속 조치인 공공주택특별법, 한국토지주택공사법, 부동산거래법 등을 마무리하는 대로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3월 임시국회는 오는 31일인 만큼 보궐선거 전후로 변 장관의 거취가 정리되는 셈이다.
변 장관은 이날 오전까지도 자리를 지키겠다는 입장에 가까웠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제 역할이 충분하다고 평가되지 못했을 때 언제든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결정에 따르겠다"면서도 "LH가 근본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책임지고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당장의 사퇴보단 사태 수습과 재발방지책 마련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청와대도 변 장관 유임에 무게를 둬왔다. 대통령 역점 사안인 부동산 안정대책이 흔들릴 우려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수습 기회를 주는 게 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기도 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전까지도 변 장관의 교체 여부에 대해 "달라진 게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여권에선 정부합동조사단의 1차 조사 결과 20건의 투기 의심사례 중 11건이 변 장관이 LH 사장 재직 시절(2019년 4월~지난해 12월) 발생한 점에서 경질이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지배적이었다. 더욱이 1차 조사 결과를 두고 '맹탕 셀프조사'라는 지적에 민심 이반이 가팔라졌다. 변 장관은 의혹이 불거진 직후 "(LH 직원이)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건 아닌 것 같다"고 두둔해 공분을 샀다.
여권의 동시다발적 경질 요구도 청와대로선 부담 요인이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전날 “어떤 조치가 필요할지에 대해 심사숙고하겠다”고 했고, 4·7 보궐선거 상임대책위원장인 이낙연 전 대표도 변 장관의 사퇴를 청와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측도 변 장관 사퇴를 강하게 요구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권 심판론이 분출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박 후보 캠프 측 고위 관계자는 본보에 "보궐선거에서 패하면 문 대통령의 레임덕이 앞당겨지는 것은 물론 내년 대선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사의 표명'만을 언급했지만, '사실상 경질'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론에 떠밀려 임명 책임이 있는 문 대통령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4·7 보궐선거와 내년 대선에 앞서 권력의 균형추가 민주당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 한 최고위원은 "4·7 보궐선거와 대선은 당 주도로 치러지기 때문에 향후 국정 운영에 있어 당의 영향력이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