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혁(가명)아! 기타 연주 좀 해줘~"
10일 서울 A고등학교 1학년 학급 음악시간. 온라인 '구글 클래스룸'을 통해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던 음악 교사는 대뜸 한 학생에게 기타 연주를 부탁했다. 당황할 법도 한데 학생은 "잠시만요" 하더니, 이내 기타를 들고 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30여 명의 같은 반 학생들은 5분이 조금 넘게 이어진 친구의 기타 연주를 감상했다. 컴퓨터 카메라를 통해 전해지는 생각지도 못한 기타 선율에 학생들은 잠시나마 긴장을 풀었다. 기타를 연주해달라는 선생님, 기타를 들고 자신있게 연주를 시작한 학생. 어느 부분 하나 어색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연주가 끝난 뒤 반 학생들은 "오~" "와~" 등 감탄사를 연발하며 박수를 보냈다. 비록 비대면 상태였지만 컴퓨터를 사이에 두고 나름대로 터득한 소통의 울림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정상 수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원격 수업은 유일한 대안이었다. 학생은 물론 교사, 학부모 모두 처음 겪지만 적응해야만 했다. 처음엔 우왕좌왕하고 허둥지둥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3월 새 학년. 코로나19도 해를 넘겼고 원격수업도 2년째를 맞았다. 온라인을 통한 학교 교육은 아이들의 모습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
이 학급에서 또 눈길을 사로잡은 게 있다. 학생들이 음악 선생님의 지도로 반주에 맞춰 애국가와 교가를 목청 높여 부르는 모습이다. 이 학교 신입생들이니 교가를 배우는 게 이상하지 않지만, 컴퓨터 카메라를 바라보며 서로 박자를 맞추고 노래하는 모습은 코로나19가 바꾼 수업 풍경이다.
이날 수업을 마친 이태현(가명·17)군은 "지난해 중학생 때는 대부분 시간을 'EBS 온라인 클래스'에 들어가 동영상 강의를 봤다"면서 "실시간으로 다 같이 노래 부르고 연주 들으니 교실은 아니지만 정말 수업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B고등학교 1학년 한지승(가명·17) 군은 재미있는 일도 겪었다. 지난해 중 3때는 EBS 온라인 클래스로 원격수업을 했지만 올해는 구글 클래스룸을 이용하면서 사용 방식을 몰라 헤맸다는 것.
한군은 과학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문제 다 푼 사람은 손 드는 표시를 해주세요"라고 말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선생님이 "그런 손 아니야~"라며 장난스럽게 말한 뒤 컴퓨터 화면에 있는 손바닥 그림 버튼을 클릭하라고 알려줬다.
한군처럼 '진짜' 손을 든 학생들은 그제서야 '아~' 하면서 버튼을 눌렀고, 선생님과 함께 한바탕 웃었다고 했다. 한군의 어머니 강희선(가명·46)씨는 "갑자기 아이의 웃음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는데 가서 보니 실수 연발들이 많았다"며 "지난해 처음 원격수업을 겪느라 어색해 하던 교사, 학생들이 이제는 조금 여유를 찾은 듯하다"고 말했다.
올해 서울 C초등학교 3학년이 된 박시한(가명·10)양은 요새 '줌(zoom)'을 통해 실시간 쌍방향으로 진행되는 원격수업이 즐겁다.
아이들은 담임 교사와 자주 만나 소통하는 데 큰 의미를 두는 듯하다. 박양은 "선생님을 매일 볼 수 있어서 좋다"며 "2학년 때는 담임 선생님과 친해질 시간이 길지 않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특히 발표할 때는 온라인 수업이 더 좋단다. 보통 교실에선 교사가 손을 든 학생 중에 발표할 학생을 직접 가리키지만, 온라인 수업을 할 땐 줌을 통해 '랜덤추첨' 기능을 쓰기 때문이다. 발표하고 싶어도 선생님의 지목을 받지 못하면 시무룩해 하던 아이들도 이 기능을 쓰고 나서는 발표 시간을 기다린다고 한다.
교사가 랜덤추첨 기능을 활용하면 컴퓨터 화면에 뽑힌 어린이의 이름이 크게 뜬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지목을 당하는 것보다 랜덤추첨 방식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박양의 어머니 은수경(가명·39)씨는 "아이가 학교에 갔다 선생님께 지목을 받지 못하면 시무룩해 했다"며 "이렇게 추첨하니 공평하다고 생각하고 긴장감 속에 집중해서 기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D초등학교에 다니는 4학년 윤준영(가명·11) 군은 지난해 해보지 않은 체육 시간 숙제를 하느라 진땀을 뺐다. 다양한 줄넘기 기술을 담은 동영상을 찍어 담임 교사에게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과제는 하루 안에 보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빠듯했다고 윤군은 전했다. 윤군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학원에 가야 해서 줄넘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며 "결국은 해가 떨어져 동영상을 찍었고 밤 12시 다 돼서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작년에는 실시간으로 과제 검사 안 했는데...." 서울 E중학교에 다니는 오진영(가명·15)양은 새 학년이 되면서 달라진 원격수업에 당황했다. 특히 수학 시간이 그랬다. 지난해에는 온라인 'e학습터'로 동영상 강의를 보고 과제를 풀어 업로드하면 됐지만, 이번에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진행돼 푼 문제를 일일이 검사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오양의 수학 교사는 수업 하루 전날 몇 가지 수학 문제를 알림란에 올려 학생들이 미리 출력해 놓도록 했다. 다음날 수업 시간에 20~30분짜리 EBS 동영상 강의를 보게 한 뒤 미리 알려준 수학 문제를 풀도록 했다. 다 푼 학생들은 종이를 카메라 앞에 갖다 댔다.
오양은 "문제를 4, 5개 정도 풀어야 했고, 만약 틀리면 다시 풀어서 카메라로 검사를 받아야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은 올해 경기 F중학교에 입학한 김현서(가명·14)양도 겪었다. 김양은 특히 기술가정 시간이 너무 힘들다고 했는데, 손바느질도 서툰데 수업 시간 안에 그날 배운 것을 완성해서 역시 카메라를 통해 검사받아야 했다.
김양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바느질한 천을 카메라 앞에 들어 보인다"며 "완성하지 못한 사람은 따로 사진을 찍어 선생님께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와 확실히 달라진 원격수업 모습인데,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달 '2021학년도 신학기 대비 학교 운영방안'을 발표하면서 원격수업 시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리 만들어진 EBS 강의만 올리다 보니 실시간 수업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많았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미리 만든 영상을 보라고 하면 학생들이 집중하기 쉽지 않다"면서 "올해는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실시간 쌍방향 수업과 과제형 수업을 번갈아 진행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고 실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BS 동영상 강의가 많았던 지난해 원격수업과 비교하면 올해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에 힘을 준 모습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에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각 학급별 '조례·종례 시간'도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서울 G초등학교에서는 지난해 수업 때는 생략했던 종례 시간이 올해는 거의 모든 학급에서 빠짐없이 이뤄지자, 오히려 학부모들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리 이에 대한 학교 측의 공지가 없었던 터라 학원을 등록할 때 고려하지 못했다는 이유다.
학교 일과가 끝나자마자 시간별로 학원 일정을 맞췄는데 스케줄이 꼬여버렸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오후 1시 40분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오후 2시에 시작하는 학원 수업에 참석해야 하는데, 그 시간에 온라인을 재접속해 종례 시간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단 10~20분 종례 시간으로 인해 학원 일정을 미룰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결국 종례 시간을 빠지는 학생들도 생겼다. 같은 학교의 한 저학년 학급에선 종례 시간에 "선생님, 00이가 학원갔다고 전해달래요"라고 전하는 경우도 있있다.
물론 학교 수업이나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해야 하지만 학부모들로서는 지난해 1년 동안 원격수업을 하느라 생긴 학습 격차를 의식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초등학생 자녀 둘을 둔 송지민(가명·42)씨는 "원격수업 도중 담임 선생님이 '이 문제는 쉬우니까 다 알죠?' 하고 그냥 넘어가더라"며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도 있었을 텐데 진도 나가는 데 급급해 보여 아쉬웠다"고 걱정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초등학교 고학년인 딸을 위해 국·영·수 외 학원을 더 알아볼 계획이다. 지난 1년 동안 학교 교과 과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나 역사, 과학 등 과목에 뒤처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서다.
그러면서 교육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교육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코로나가 덮친 지난해 전체 사교육비 총액은 9조3,000억 원으로 11.8% 줄었지만, 사교육 참여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3만4,000 원으로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