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3일 오전 8시쯤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거운 물체가 바닥을 내리치는 듯 굵고 짧은 몇 번의 울림. 경의선숲길을 걷던 이들의 눈과 귀가 일제히 소리가 나는 곳으로 쏠렸다.
잠시 후 덥수룩한 머리의 한 남성이 튀어나왔다. 시민 몇 명이 뒤를 쫓았지만,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리의 정체는 신고를 받은 경찰관들이 출동한 뒤 밝혀졌다.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고양이 사체가 남겨져 있었다. 잔혹한 학대의 흔적과 함께 죽은 고양이 주변에는 흰색 가루가 흠뻑 묻은 검은색 비닐봉지가 발견됐다. 봉지 안에는 고양이 사료가 담겨 있었다.
경찰은 “고양이 사료에 묻은 흰색 가루는 세탁 세제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찰이 확인한 폐쇄회로(CC)TV 속 남성은 세탁세제 섞은 사료와 물을 화단에 누워있던 고양이에게 건네고 있었다. 고양이는 먹기를 거부하자, 남성은 고양이 꼬리를 잡아 들어 올린 뒤 땅과 인근 가게 난간 등에 패대기치길 반복하고 있었다.
남성은 병에 담아온 세제 섞은 물을 고양이에게 뿌렸다. 고양이는 강한 타격에 이미 땅바닥에 축 늘어진 상태였다. 물이 몸에 닿을 때마다 몇 번 움찔거렸지만, 돌아온 건 머리를 짓밟는 남성의 발길질이었다. 남성은 고양이에게서 미동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자, 고양이를 화단 구석진 곳에 던져 버렸다.
닷새가 흘러 서울 마포경찰서로 39세 정모씨가 체포됐다. 정씨는 고양이 사체가 발견된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고시원에 홀로 살고 있었다. 그는 "고양이를 싫어했다. 평소 산책하러 다니는 경의선숲길에 고양이가 너무 많았다"고 했다. 걷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고양이 때문에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고양이에게 다리를 물린 적도 있었다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사료를 주기 위해 통행로를 막는 행태에도 화가 났다고 했다.
정씨는 법정에서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했다. "저는 동물을 좋아했습니다. 길거리를 가다가 반려동물을 보면 말도 걸고 쓰다듬기도 하고요. 그러다 몇 년 전 취업 사기로 명의 도용을 당해 소송을 당했습니다. 현재까지 취업도 못하고 신용불량자로 살아가는 신세가 됐고,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눈에 들어온 고양이가 화풀이 해소 대상이 된 것 같습니다.” 자신이 고양이에게 분노해 잔혹했던 이면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였다. 정씨는 “기회가 닿는다면 속죄하는 심정으로 자원봉사도 하고 동물 보호에도 앞장서겠다"고 읍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서부지법은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하면서 정씨를 법정구속했다. 그는 호소와 별개로 고양이가 싫어 돌멩이를 던졌는데 '아무런 데미지(피해)가 없고 느낌도 없는 거 같아 세제를 사용해봤다'고 했다. 고양이를 내동댕이쳐 숨지게 했을 때도 '세제를 섞은 사료와 물을 고양이가 먹으면, 죽는지 안 죽는지 보려고 했다'고도 진술했다. 범행 전 목장갑을 준비해 끼고 세제와 물을 쇼핑백에 담아 준비한 점, 범행 후 고양이 사체가 쉽게 발견되지 않도록 구석진 곳에 옮겨놓은 점, 범행 후 도구들을 주변 쓰레기통에 버리고 달아난 점을 미뤄볼 때 그에게 고양이는 단순한 화풀이 해소 대상이 아니었다. 정씨에게 주어진 징역형은 2심을 거쳐 그대로 확정됐다.
동물, 그중에서도 고양이를 잔인하게 학대하고 죽이는 이상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동물학대는 엄연히 형사처벌 대상. 그럼에도 혐오와 학대 수준을 뛰어넘어 고양이를 살해하고 시체를 희롱하는 일까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범죄학자 등은 갈수록 잔인해지는 고양이 학대 현상을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고 진단한다.
실제 최근 수년간 발생한 고양이 학대 사건의 면면을 살펴보면, 상당수 범행 행태가 괴기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지난해 50대 남성 A씨는 경기 화성시 주택가에서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고양이가 소리를 내며 물자 수차례 바닥에 내리쳐 죽이고는, 이튿날 새 고양이를 분양받아 와서 다시 때려 죽였다. 2019년 5월엔 A(47)씨가 전북 군산시 집 마당에서 수렵용 화살촉인 '브로드 헤드'가 달린 화살을 고양이에게 쏴 크게 다치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서울 마포구와 관악구에서는 지난해 고양이 토막 사체가 잇따라 발견되는 등 '연쇄 도살'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고양이에게 이토록 잔인한 짓을 하는 걸까. 2019년 부산의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 중, 업주가 키우던 새끼 고양이를 주먹으로 때리는 등 학대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창밖으로 내던져 죽게 만든 C(18)씨는 경찰 조사에서 짧게 대답했다.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기분이 나빴습니다."
2017년 끓는 물로 고양이를 학대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D(25)씨에게도 그럴 듯한 이유는 보이지 않았다. "키우던 닭을 잡아먹는 동물을 잡으려고 덫을 놓았는데 길고양이가 잡히더라. 화가 나서 그랬다"는 게 전부였다. 고양이 학대 가해자들이 밝힌 범행 동기 대부분은 '그냥 기분이 나빠서', '화가 나 있는데 눈에 보여서', '울음소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등이었다.
최근엔 고양이 학대 사실을 공공연하게 자랑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올해 1월 서울 성동경찰서는 온라인메신저 대화방에서 고양이 학대 영상을 공유하며 희롱한 '고양이 고어방' 사건에 대해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대화방 참여자들 사이에선 '길고양이를 죽이고 싶은데 어떻게 구해야 하나', '고양이 맛이 어떤가' 등의 대화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유튜브에는 고양이 학대를 주제로 한 유튜버들이 속속 등장할 정도다.
학대 이유를 고양이의 생존 형태에서 찾기도 한다. 예컨대 길고양이는 주인이 없어 가해자들이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흉악한 범행을 하고도 가해자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뿐더러, 고양이는 늘 먹이를 찾아 다니기 때문에 유인하기 쉽다는 해석이다.
전문가들은 고양이 학대 범죄가 증가하는 것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의미를 찾고자 한다. 높아지고 있는 분노·혐오 지수가 사람을 넘어 동물에게 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다양한 분노와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고양이 울음소리를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범죄심리학자들은 잔혹한 고양이 학대 행위가 강력범죄의 전조 현상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에선 살인범 45%, 가정 폭력범 36%, 아동 성추행범 30%가 고양이 등 동물 학대 경험이 있다는 연구(보스턴 노스이스턴대)가 있었고, 가정폭력 피해 여성 4,700여명을 조사한 결과 가해자 83%가 반려동물을 폭행·사망하게 한 전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이미 2016년부터 국가사건기반보고시스템에 동물학대 데이터를 유형별(방치·의도적 상해·학대·투견·성적 학대)로 구분해 축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흉악범들 중 상당수가 동물학대 전력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유영철과 딸 친구를 추행하고 살해한 이영학의 경우 살인에 앞서 여러 마리의 개를 때리거나 죽였다. 이 가운데 강호순은 "개를 많이 죽이다 보니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됐고, 살인 욕구를 자제할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달 강원 원주시에서 두 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23년을 선고 받은 20대 남성은 심리검사 중 '고양이 소리가 싫어 6마리를 죽임'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에 따라 강력범죄 예방의 차원에서라도 흉악해지는 고양이 학대 사건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는 최근 동물보호단체 '카라'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범죄자들의 심리는 동물을 학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결과를 통해 많은 사람을 놀라고 충격받게 하면서 자신의 자존감을 찾는다"며 "동물학대는 강력범죄 대응처럼 사건 발생시 신속히 초동대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