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들

입력
2021.03.11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공직자는 직간접으로 국민에 의해 선출되거나, 정부에 의해 임명되어 중앙과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서 공무를 담당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공익을 위한 직업인 만큼, 봉사정신과 청렴결백의 직업윤리가 강조된다. 하지만 오늘날 이 같은 윤리적 요구는 공직자가 목민관으로서 국민에게 사표(師表)가 돼야 한다는 전근대적 사고에 의한 게 아니다. 그저 국민이 고용한 ‘일꾼’의 책무만이라도 성실히 다 하라는 정도다. 따라서 공직윤리가 결코 전인적 윤리일 순 없다.

▦ 그럼에도 과거엔 그야말로 멸사봉공의 자세로 일한 공직자도 드물지 않았다. 1950년대 외무장관과 총리를 역임한 변영태 선생은 “총리도 장관도 국민의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올바른 몸가짐을 갖춰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나중에 공직을 마친 뒤엔 “나는 공직에 있을 때 새벽이면 묵상을 하며 오늘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곰곰이 성찰했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요즘엔 이런 멸사봉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일 수밖에 없다.

▦ 그러나 직무 범위 내에서 성실하게 책무를 이행하는 차원의 공직윤리만 해도 결코 가벼운 건 아니다. 특히 고위공직자로서 직무범위가 넓어질수록 지켜야 할 윤리적 요구도 크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조국씨 일가의 ‘입시스펙 만들기’가 정권의 근간을 뒤흔들 만큼 엄중한 비리 스캔들로 비화한 것도 조씨가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장관이라는 정무직 공무원이자, ‘정의’와 ‘공정’을 내세운 현 정권의 실세였기 때문이다.

▦ 고위공직자의 경우 적어도 자신과 주변의 비위가 드러나 국시(國是)와 공직기강을 훼손하는 정도라면 스스로 송구히 여겨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맞다. 그렇게 하지 않고 ‘내로남불’식으로 어물쩍 넘기는 일이 만연하다 보니 “우리라고 부동산 투자 하지 말란 법 있냐”는 LH 직원의 개탄스러운 항변이 나올 정도로 공직기강이 무너진 것이다. 고위공직자로서 나라를 좀먹는 ‘공공의 적’이 안 되려면, 정무직 공무원이든 국회의원이든 지자체장이든, 비위가 드러나면 스스로 퇴진해 공직에 대한 예의라도 지켜주는 게 도리다.

장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