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이란, '포로 교환'으로 핵협상 신뢰 쌓나

입력
2021.03.12 00:10
英총리, 이란 대통령에게 자국민 석방 요구
이란 측 "죄수 교환" 언급 뒤 합의 준수 종용

‘이란 핵 합의’(JCPOAㆍ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당사자들인 서방 국가들과 이란이 합의 복원 협상 착수를 위한 정지 작업에 시동을 거는 분위기다. 상대방이 억류 중인 자국민 정치범들의 석방을 서로 요구하고 나섰다. 포로 교환은 신뢰 조성 수단으로 간주된다.

영국 총리실은 10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보리스 존슨 총리가 오늘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란에 구속돼 있는 영국ㆍ이란 이중국적자를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성명에 따르면 존슨 총리가 통화에서 대표 격으로 언급한 인물은 영국 자선 단체 활동가인 나자닌 자가리-랫클리프다. 영국인과 결혼한 그는 2016년 4월 친정 가족을 만나러 이란을 방문한 뒤 영국으로 돌아가려다 공항에서 체포됐고, 체제 전복 모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5년간 복역했다. 하지만 지난해 반체제 선동 혐의로 추가 기소되면서 다시 이란에 붙잡힌 상태다.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이란에서는 영국 국적이어도 영국의 영사 조력을 받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이날 영국 측 요구는 세계 각국에서 체포된 자국민의 석방을 위해 미국과 죄수를 맞교환할 준비가 돼 있다는 이란 정부 측 입장이 나온 지 하루 만에 이뤄진 것이다. 전날 기자회견에서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이 교환 대상 인물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외신은 최근 벨기에 법원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 받은 이란 외교관 아사돌라 아사디 등을 염두에 둔 언급으로 해석했다. 아사디는 2018년 6월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열린 이란 출신 망명자 집단 ‘피플스 무자헤딘 오브 이란’(MEK)의 행사를 겨냥한 폭탄 공격을 모의한 혐의다.

통상 억류한 상대국 정치범을 풀어주는 것은 적대국 간 본격 협상을 앞두고 협상에 필요한 최소한의 상호 신뢰를 쌓을 목적으로 양측이 주고받는 관계 개선용 외교 조치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목전인 2018년 5월에도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에 들어가 한국계 미국인 3명을 데리고 나온 일이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현재 JCPOA 합의의 주요 당사국인 미국 및 프랑스ㆍ독일ㆍ영국 등 유럽 3개국(E3)과 이란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일방적 탈퇴로 파기된 합의를 복구하려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JCPOA에는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러시아ㆍ중국까지 포함된 6개국이 대(對)이란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실제 존슨 총리는 미국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기회를 잡아야 한다며 이란 측에 합의를 준수하라고 종용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협상 의지는 있지만 양측이 자국 내에 내세울 정치적 명분이나 계기가 마땅치 않은 형편에서 정치범 석방 교환은 돌파구가 될 수 있다”며 “영국이 적극적 역할을 하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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