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지도자들 '권좌' 흔드는 코로나

입력
2021.03.11 05:30
15면
연일 바뀌는 브라질 하루 사망자 기록에
보우소나루 정부 부정적 평가 40% 상회
파라과이에선 나흘째 "대통령 퇴진" 시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남미 지도자들의 ‘권좌’까지 흔들고 있다. 1년 넘게 지속되는 ‘현대판 역병’에 대응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정권의 존폐가 달려 있는 것이다.

에두아르두 파주엘루 브라질 보건장관은 9일(현지시간) 브라질리아에서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관계자들을 만나 ‘코백스 퍼실리티’(백신 공동 배분ㆍ구매 연합체)의 코로나19 백신 분배 과정에서 “브라질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백신 부족으로 접종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지원을 공식 요청한 것이다. 이는 이제 백신 접종 속도전에 적극 나서야 할 때라는 각성에 따른 조치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측근들은 이날 현지 언론에 “앞으로 백신 확보와 공격적으로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동인(動因)은 지지율 추락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유행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도 줄곧 심각성을 무시하며 방역에 안이하게 대처했다. 여기에 백신 접종에마저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고, 이런 행태는 확보된 백신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확진ㆍ사망자가 급증하고 경제도 죽어가는 최악의 형편으로 이어졌다. 정부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4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난 최근 설문조사 결과에는 자연스레 악화한 여론과 고조된 불안이 반영돼 있다.

직면한 현실은 더 나빠지기 어렵다. 이날 하루 사망자 1,972명은 사태 발발 뒤 최대치다. 언론 컨소시엄 집계 기준 일주일간 하루 평균 사망자 수는 48일째 1,000명을 넘고 있고 지난달 27일(1,180명) 이후 11일 연속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전국 27개 주(州) 가운데 최소한 20곳에서 심각한 병상 부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게 보건부 연계 연구기관의 경고다.

마침 대안까지 부상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로 부패 혐의를 벗으며 내년 대선 출마가 가능해졌다. 군사독재 찬양과 소수자 탄압, 막말 등으로 물의를 빚어 온 보우소나루 대통령에게는 대형 악재다.

하지만 더 위태로운 건 파라과이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대통령의 자리다. 아브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5일부터 전날까지 나흘째 계속됐다. 시위대는 아브도 정부가 코로나 사태에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의약품ㆍ병상 부족을 불렀다고 주장한다. 하루 확진자 수는 전날 최대치인 1,817명까지 치솟았고 백신 확보도 더디기만 하다. 이에 최대 야당인 참급진진보당이 대통령 탄핵 추진을 선언한 상황이다.

거꾸로 지도자가 감염병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은 나라도 있다. 칠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면역률 세계 선두인 이스라엘까지 추월하는 백신 접종 속도전으로 2019년 사회 불평등 항의 시위 때 한 자릿수로 떨어졌던 지지율을 20% 안팎까지 끌어올렸다.

권경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