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작가가 쓴 X세대의 '번아웃' 이야기

입력
2021.03.10 14:42
12일 개막하는 국립극단 연극 'X의 비극'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피로사회가 고착화하면서 한때 이런 말이 유행했다. 12일 개막하는 국립극단의 'X의 비극'은 바로 이런 '웃픈(웃기지만 슬픈)' 시대정신이 낳은 연극이다. 극의 주인공 마흔넷 현서는 공연 내내 누워있다. 주인공의 역동성이 극단적으로 제한되는 작품이다. 현서의 가족들은 그를 다시 일으키려 분투하지만 현서는 꿈쩍하지 않는다. 바닥에 등을 댄 이유가 단지 게을러서가 아니기 때문에.

민주화 시대를 거쳐 경제 성장기의 혜택을 누리며 자기주장이 강하다고 규정된 X세대. 언젠가 신세대였지만 지금은 중년에 접어들며 삶의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X세대를 대변하는 현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남을 이겨야 하는 제로섬게임 사회'의 피해자다. 번아웃(Burnout) 된 것이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며 극도의 무력감 끝에 예상치 못한 계기로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극은 특정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대사와 심리에 집중한다.



극은 현서와 같은 X세대인 이유진(45) 작가가 친구의 마음으로 썼다. 이 작가는 "10여 년 전 처음 X세대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30대여서 주로 행복함을 구상했으나 나이가 들며 주제도 변했다"고 했다. ‘X의 희극’이 시간이 흘러 ‘X의 비극’이 된 셈이다. 이 작가는 "드러눕는 행위는 패배와 우울함을 상징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과의 갈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냉소적이고 어두운 분위기가 펼쳐지지만 대사 곳곳에 위트를 담으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누구보다 현서를 이해할 만한 X세대를 겨냥한 작품이지만 이 작가는 "20, 30대도 공감할 만한 대목이 많다"며 "연극이 뚜렷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극 제목의 X는 미지수로서, 현수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뜻도 된다.

'X의 비극'은 국립극단이 희곡을 투고 받아 작품성이 뛰어난 극을 무대화하는 '희곡우체통' 제도의 2020년 초청작이다. 지난해 이미 극본 낭독회를 개최했다. 이번 공연에는 배우 김명기, 문예주, 이상홍, 이유진, 송석근, 김예림 등 국립극단 시즌단원들이 무대에 올라 면밀한 연기를 보여줄 예정이다. '궁립공단_무아실업' '먼지섬'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윤혜진 연출이 제작에 참여했다.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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