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출신 대선 주자의 험로

입력
2021.03.09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8월 임기 2년의 대표에 선출됐으나, 당권과 대권을 분리한 당헌에 따라 대선 출마를 위해 대선 1년 전에 사퇴한 것이다. 하지만 당 대표 취임 당시 24.6%의 지지율(리얼미터 기준)로 대선 레이스 1위를 달렸던 그는 8일 공개된 조사에선 13.8%로 3위까지 내려앉아 대선 도전의 여정이 험난하다.

□ 이 대표가 차기 대선 주자로 발돋움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첫 국무총리를 맡았기 때문이다. 전남지역 4선 국회의원과 전남지사를 지냈던 그는 국무총리에 올라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보인 촌철살인의 화법과 진중한 스타일로 큰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정권 2인자 위상인 그의 지지율도 동반 추락했다. 당내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경쟁에서도 열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 이는 총리 출신 정치인들의 업보 같다. 총리직을 발판으로 단숨에 대권 후보 반열에 오르지만 그 지위가 오히려 족쇄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이홍구, 이수성, 김종필, 박태준, 고건, 이해찬, 정운찬, 황교안 등 대선 후보로 거론된 총리들이 많았으나 대통령이 된 사례는 없다. 김영삼 정부에서 총리를 맡았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권에 가장 근접했으나 그 역시 고배를 들었다.

□ 총리는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에겐 양날의 검이다. 전국적 인지도와 국정 운영 경험, 세 규합 측면에서 도약의 발판이 되지만 정권 계승자라는 위상은 독으로 돌아온다. 역대 정부 모두 임기 말에는 각종 실정으로 지지율이 추락해 그 책임까지 걸머져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탄핵당한 박근혜 정부의 총리라는 굴레를 벗기 어렵다. 더군다나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 자기 색깔을 갖기 어려운 것도 총리 직의 정치적 한계다. 이런 장단점을 고려하면 대권보다 당권에 집중해 킹 메이커 역할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인다. 이해찬 전 총리가 가장 성공적인 행보를 걸은 셈이다.

송용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