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Z', 뜨거운 전쟁의 바다

입력
2021.03.09 04:30
26면
3.9 1995년 가자미 전쟁


1982년 제3차 유엔 국제해양법조약이 200해리(약 370㎞)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정하고 1994년 국제사회가 비준했다. 간조 기준선에서 12해리(22㎞) 이내 영해가 정치적 주권 공간인 반면 EEZ는 공해(公海)이면서 연안국의 경제적 주권을 인정하는 다소 애매한 수역이다. 연안국은 EEZ 생물·비생물 자원 탐사 개발에 우선권을 가지면서 자원 관리 및 해양 보전 의무를 진다.

영국의 대구(cod) 남획에 아이슬란드가 소형 경비정으로 맞섰던 1970년대 '대구 전쟁(Cod War)'의 전장도 EEZ였다. 약소 어업국 아이슬란드엔 사활이 걸린 문제여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까지 불사할 태세였다. 다행히 소련의 북대서양 교두보를 내줄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력에 영국의 과욕은 꺾였다. EEZ 논의가 본격화한 것도 그 직후였다.

하지만 EEZ가 가두리 양식장도 아니어서 공해상 경계 지역 어로는 EEZ 어족 자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업 분쟁이 그래서 끊이지 않는다. 어선 숫자와 어획량, 어로 방식, 그물 눈 크기까지 규제하는 온갖 협정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1995년 3월 9일, 캐나다 해양부 감시선이 해군 지원을 받아 뉴펀들랜드 해역 EEZ 경계의 가자미 황금어장인 '그랜드뱅크'에서 스페인 트롤리선 '에스타이(Estai)호'를 나포했다. 직후 캐나다 해양부장관 브라이언 토빈(Brian Tobin)은 캐나다 어업법을 위반한 스페인 어선의 촘촘한 그물과 비밀 탱크에 가득 찬 보호 어종, 어획량을 속인 이중 장부(logbook)를 공개했다.

공해상이었다는 점을 들어 스페인 정부도 격렬히 항의하며 해군 구축함을 출동시켰다. EU는 회원국 스페인을 편들며 무역 규제를 시도했고, 영국은 연방국 캐나다 편을 들었다. 일촉즉발의 '가자미 전쟁(Turbot War)'은 국제해양법재판소의 캐나다 승소 판정으로 봉합됐다. 브라이언 토빈은 '캡틴 캐나다'란 애칭을 얻어 1996년 뉴펀들랜드주 총리에 당선됐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