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주도해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여권’ 논의에 중국이 가세했다. 백신을 접종하면 국가 간 상호 인증하자는 것이다. 방역 성공에 이어 백신 외교로 대외 영향력을 넓혀가는 중국이 코로나 국면에서 존재감을 재차 뽐낼 기회를 잡으려 하고 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8일 “각국의 보건 체계와 백신 접종 상호 인증에 대한 복잡성을 고려해 초기 단계에서는 중국 본토와 홍콩, 마카오 간 먼저 시행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전했다. 전날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핵산 검사와 백신 접종 정보를 국가끼리 공유하는 건강코드 상호 인증서를 시행해 안전한 인적 교류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한마디로, 중국산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면 접종률이 높은 전 세계 주요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국경을 열자는 주장이다.
이 같은 아이디어는 유럽연합(EU)이 먼저 꺼냈다. 지난달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올여름까지 역내 회원국을 여행할 수 있는 백신 여권을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후 한국, 이스라엘, 싱가포르, 태국 등에서 이동의 자유를 보장할 백신 여권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마저 합류할 경우 새로운 글로벌 표준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노림수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중국 백신을 승인한 국가는 60개국이 넘는다. 또 백신을 43개국에 수출했고, 69개국에는 무상 지원하고 있다. 이에 더해 EU와 백신을 상호 인증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한다면 중국 백신은 해외 입출국을 위한 필수 아이템으로 부각되는 셈이다. 중국의 ‘백신 외교’가 날개를 단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진행 중인 중국 연례 최대 정치행사 ‘양회’에서도 “핵심 검사 음성증명서와 백신 여권을 소지한 경우 해외 입국자의 14일간 격리를 면제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접종 상호 인증을 통해 자국 백신의 효능과 안정성 논란을 단번에 잠재울 수 있다. 중국은 17가지 백신을 개발(이 중 4개 승인)하고 있지만 아직 임상시험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아 서구 국가들은 “믿을 수 없는 백신”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V 백신도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승인한 이후 “푸틴 대통령 본인도 맞지 않는 백신”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하지만 동료 과학자들의 검증을 거쳐 지난달 의학 학술지 ‘랜싯’에 임상 결과가 실리면서 이미지가 180도 바뀌었다. 이후 러시아 백신 승인 국가는 44개국으로 급속히 늘었다. 이에 중국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 정보를 국제적으로 인증하면 중국 백신의 효과도 서로 인정한다는 의미”라며 제도 도입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