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ㆍ대학 무력 점거한 미얀마 군, 계엄령 임박

입력
2021.03.0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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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진입 막던 주민들, 무차별 구타에 부상 
시민들은 3차 총파업 맞불, 전통치마 시위도
시민 잇따라 총상... 최소 2명 또 사망

시위대를 향한 미얀마 군부의 폭력 진압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계엄령 선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대학과 병원, 공공시설을 무력으로 점거하면서 인명 피해가 속출했다. 시민들이 3차 총파업으로 맞선 8일 적어도 2명이 또 군부의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

미얀마 나우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군은 이날 새벽 양곤과 만달레이ㆍ사가잉주(州) 등 최소 10개 지역에 위치한 주요 시설을 기습 점거했다. 주요 목표는 시민불복종운동(CDM)의 주력이자 부상 당한 시민들을 치료하고 시위대의 피난처로 활용되던 200여개의 각급 병원과 대학이었다. 전력국과 철도역사 등의 운영권도 확보했다. 이들 시설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건 계엄령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8일 야간 통금 및 5인 이상 집회 금지를 담은 '제한조치 144조' 발동에도 저항이 확산일로이자 급기야 계엄령을 발동하겠다는 전략이다.

시민들은 극렬히 저항했다. 만달레이 공과대학 등의 학생과 교수들은 바리케이트를 친 뒤 군인들의 진입을 저지했고, 몬와와 라카인 주민들도 지역 병원의 입구를 막아서며 물러서지 않았다. 군인들은 고무탄과 실탄을 발사하며 막무가내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민은 무차별 구타를 당하는 등 최소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항 세력에 대한 검거도 잇따랐다. 군은 최근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중앙위원 등 핵심 지도부 15명 이상을 긴급체포했다. 이들 대부분은 쿠데타 직후 구금됐다가 석방된 인사들이다. CDM을 지지하는 유명 배우와 각 마을 자경단원 등의 실종 소식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군부는 "평화 시위로 위장해 국가를 전복하려는 인원들에게 법치주의를 효과적으로 집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현지 소식통은 "통행제한 등 긴급조치와 달리 미얀마 군부가 사법권까지 장악하는 계엄령은 시위 자체를 내란죄로 다룰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며 "국제사회 비판에 귀를 닫은 군부의 노골적인 학살과 공포가 엄습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날 시민들은 3차 총파업 동참으로 결사 항전의 뜻을 드러냈다. 군부가 'CDM 공무원 복귀 가능 마지막 날'이라고 경고했지만 오히려 공기업 노조 등 9개 단체가 이날 파업에 추가 합류했다. '여성의날'인 이날을 기념해 각종 여성단체들은 '그 밑을 지나가면 힘을 잃는다'는 미신이 전해지는 전통치마로 깃발을 만들어 거리에 나섰다.

군부의 대답은 오로지 폭력이었다. 낮 12시 40분 북부 미치나 시위 현장에서 시민 3명이 군의 실탄에 맞았으며, 2명은 현장에서 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얀마의 비극은 여전히 시민들의 피 위로 흐르고 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