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슈퍼부양안에 유가 상승까지… '인플레 우려' 더 커진다

입력
2021.03.08 19:30
브렌트유 가격 21개월만 70달러 돌파
유가상승 → 소비자물가 상승 이어져 
인플레 압력에 미 금리 인상 가능성도

글로벌 금융시장에 ‘인플레이션(물가상승)’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출시에 따른 경기회복 기대, 확장재정으로 늘어난 시중 유동성 등 인플레 ‘장작’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중이다. 여기에 물가 영향이 큰 국제유가마저 연일 거침없이 솟구치고 있다. 유가 상승세가 미국발(發) 금리 인상을 앞당기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단 우려마저 나온다.

8일 런던 국제선물거래소(ICE)에서 5월 인도분 브렌트유 가격은 전장 대비 1.11달러(1.6%) 오른 70.65달러를 기록, 2019년 5월 이후 처음으로 70달러선을 넘어섰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역시 배럴당 67달러 선까지 올라왔다.

이날 국제유가 상승을 견인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주요 유전지대 라스타누라가 예멘 후티반군의 공격을 받은 탓이다. 이 곳에는 세계 최대 정유시설과 석유 수출항이 모여있다. 후티반군은 성명에서 해당 지역에 드론 14대, 탄도미사일 8발 등을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라스타누라 석유저장탱크가 공격 받았지만 손실은 없다”는 사우디 에너지부의 달래기에도 공급 제한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원유 가격을 끌어올렸다. 경기회복 기대감과 산유국 감산 기조로 상승하던 국제유가가 국제 정세라는 ‘돌발 변수’까지 만나면서 꺾일 기미를 찾기 어렵게 된 것이다. 앞서 4일에도 OPEC과 러시아 등 10개 산유국 연합(OPEC+)이 시장의 예상을 깨고 감산 기조를 유지하기로 하면서 국제유가가 4.2% 폭등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4월 한 때 브렌트유 가격이 19달러 선까지 떨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유가는 감염병 쇼크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습이다. 시장도 앞다퉈 유가 상승에 베팅하고 있다. 글로벌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브렌트유 전망치를 올 3분기 배럴당 75달러로 점쳤지만, 최근 하반기 80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높여 잡았다.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다시 열릴 것이란 이른 전망도 있다.

문제는 국제유가가 물가 ‘바로미터’라는 점이다. 유가 오름세는 시차를 두고 소비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산업 곳곳에 쓰이는 원유가격이 폭등하면 공장 가동비용, 전기요금 등이 오르며 물가상승 압력이 커진다. 원유시장에서는 가격이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정 수준을 50~ 60달러 사이로 보는데, 70달러까지 치솟은 것은 이미 과열 국면에 진입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유가 급등은 코로나19로 풍부해진 유동성과 함께 인플레이션 우려에 불을 지피고 있다. 또 전날 미국 상원이 1조9,0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안을 사실상 통과시키며 천문학적 자금이 시중에 풀리게 돼 물가상승엔 더욱 더 속도가 붙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에 고민을 안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목표(2%)를 달성하기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며 완화적 통화정책을 재확인했는데, 물가 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빨라질 경우 연준이 결국 금리상승에 나설 수 있다고 본 셈이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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