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에 뜻밖의 많은 비가 내려서, 봄비가 다 오신 것 같았다. 날씨 관련 기사를 보니 하루 사이에 한 달 내릴 양의 7할 정도는 내린 셈이라고 한다. 코로나에 지친 마음을 씻어주길 바라면서 연신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산간 지역에서는 단비가 아니라 폭설이었고, 많은 이들이 고생했다고 하니 세상 공평하기가 이처럼 어렵다.
누구에게나 단비 같은 소식이 오면 좋으련만 아직도 온 나라가 고단하고, 바깥 사정도 여전히 녹록지 않다. 코로나에 봄을 빼앗긴 것도 서러운데 어수선한 세상 소식까지 겹치니, 이상화(1901~1943)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말씀이 새삼스레 생각난다. 복잡한 심사를 떨치고자 한시(漢詩) 몇 수를 들척여 보았다.
세상만사 억지로 되는 것 없고 때가 되어야 절로 풀린다는 이치를 봄에 비유한 시가 많은데, 주희(朱熹, 1130~1200)는 '책을 보다 든 생각(觀書有感)' 제2수에서 깨달음의 경지를 봄으로 풀어냈다.
"지난밤 강가에 봄비 흠뻑 내리더니 집채만 한 큰 배가 깃털처럼 가벼워라. 예전에 밀어보려 무던 애를 썼건만 오늘은 강 가운데 저절로 두리둥실.(昨夜江邊春水生, 蒙衝巨艦一毛輕, 向來枉費推移力, 此日中流自在行)"
겨우내 꽁꽁 언 얼음에 갇혀 있던 배를 밀어 보았던 기억이 있다. 헛수고일 뿐이었다. 그런데 봄비에 배가 저 혼자 스르르 강 가운데로 나갔다. 그 전에는 그리 애를 써도 풀리지 않던 세상살이가 봄비에 강 풀리듯이 스르르 해결되었다. 공부란 것도 이렇지 않겠는가.
단기간에 억지로 주워 삼킨 지식은 내 것이 될 수 없고, 오랜 시간 공력이 쌓이다 보면 저절로 이치를 깨달을 날이 온다는 것을 비유했다. 자칫하면 상투적 훈계로 들릴 이야기를 부드럽게 시로 전달한 덕분에 읽는 이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읊조리게 된다.
가벼운 설렘과 춘흥에는 역시 당나라 최호(崔護)의 '제도성남장(題都城南莊)'이 적격이다.
"작년 오늘 여기는 그 사람과 복사꽃 발그레 피던 곳. 님은 지금 어디로 갔는지. 그 꽃만 예같이 봄바람에 웃고 있네.(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 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
찰나에 만나고 꿈결같이 멀어진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수채화처럼 그려냈다. 중국에서 하도 애창되어 시구를 딴 '인면도화(人面桃花)'라는 경극이 나왔을 정도이다.
봄이 너무 아름다워서인가 오히려 찬란한 봄꿈에 인생무상을 느낀 사람들도 있다. 유정지(劉庭芝)의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올해 꽃 지면 얼굴색도 변하리(今年花落顔色改), 내년 꽃필 때면 누가 또 건재할까?(明年花開復誰在)… 해마다 피는 꽃은 같은데(年年歲歲花相似),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구나(歲歲年年人不同)"
고섬(高蟾)의 '춘(春)' 마지막 구절도 비슷한 정서를 보여준다. "훈훈한 봄바람도 머리 위의 흰 눈만은 녹이지 못하네.(縱得春風亦不消)"
사색적인 사람들에게는 송나라 구양수(歐陽修, 1007~1072)의 '풍락정춘유(豐樂亭春遊)'도 어울린다.
"빨간 꽃핀 푸른 산에 해는 지려는데 너른 들의 풀빛은 끝없이 넘실댄다. 나들이객은 스러지는 봄 개의치 않고 정자 앞을 오가며 떨어진 꽃을 밟네.(紅樹靑山日欲斜, 長郊草色綠無涯. 遊人不管春將老, 來往亭前踏洛花)"
이 시를 읽다 보면 잔잔한 느낌에 끌리다가 부지불식간에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지나갔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아까운 좋은 시절 다 보내놓고 수선을 떠는 게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시절까지 하 수상하니 올봄도 놓쳐 보낼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