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투기 의혹' 일파만파… 수사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검찰

입력
2021.03.0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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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 조정 탓 '부동산 투기' 수사대상 아냐
朴 장관 "엄정 대처"...검찰 내 "대처할 게 없어"
물증 확보가 관건인데... "타이밍 늦어" 지적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검찰이 주도적으로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올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의 영향으로, 검찰은 부동산 투기사범에 대한 수사권한이 없어 직접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7일 논평을 통해 "1기, 2기 신도시 투기와의 전쟁에서 계좌추적, 압수수색으로 성과를 올렸던 검찰을 배제하고 국토교통부가 앞장선 조사 결과를 믿으라는 것인가"라고 밝혔다. 정부가 국무조정실·국토교통부·행정안전부·경찰청·경기도·인천시가 참여하는 조사단을 꾸리고 3기 신도시 등을 전수 조사하기로 주문했는데, 조사기관에 검찰이 빠진 것을 지적한 것이다.

검찰은 수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검·경 수사권이 조정되면서 검찰은 올해부터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등 6대 중대범죄에 한해서만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다. 6대 중대범죄 세부항목을 살펴본 결과, 부동산 투기사범을 수사할 법적 근거는 없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일각에선 LH 임직원들은 공사 소속이기 때문에 '부패범죄'로 인식해 수사할 수 있지 않냐는 의견을 내놓는다. 하지만 부패범죄가 되려면 뇌물수수나 알선수재 혐의가 포착돼야 하는데, 현재 제기된 의혹은 임직원들이 직접 땅 투기에 나섰다는 내용이라 직접 수사에 나설 연결고리가 없다. LH 임직원들이 공개되지 않은 신도시 예정지 정보를 이용했다면 '경제범죄'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검찰은 자본시장법상 미공개정보 이용 범죄만 수사할 수 있어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박범계 장관이 지난 5일 대검에 "부동산 투기 사범에 엄정 대처하라"고 지시했지만, 검찰 내에선 "대처하고 싶어도 현재로선 마땅히 할 게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찰이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 영장을 신청하면 이를 검토하는 정도가 검찰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검사는 "경찰에서 수사를 마무리해 사건을 송치하면 할 일이 생기겠지만, 지금은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갖고 있어 섣불리 수사 지휘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선 LH 사태와 관련한 수사 착수 시점이 이미 늦었다는 지적도 있다. LH 임직원들이 실제로 매매에 결부돼 있는지 밝혀내려면 '물증'을 확보하는 게 관건인데, 정부 조사단과 경찰 수사팀이 다소 늦게 꾸려졌다는 것이다. 특수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했을 때 서둘러 강제수사에 돌입했어야 했다"며 "증거가 이미 인멸됐다면 주로 진술에 의존하는 수사가 이어질 텐데,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