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말 검찰총장의 조건

입력
2021.03.07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차기 검찰총장은 문재인 정부 마지막 총장이다. 임기가 절대적이진 않지만 차기 총장 임기 2년은 이번 정부와 차기 정부에 절반씩 걸쳐 있다. 두 정권에 걸친 역대 총장들은 쉽지 않은 길을 가야 했다. 정권의 시간이 끝나면 검찰의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권 말, 정권 초에 어김없이 터지는 정치적 사건에서 총장의 결심은 정권 색깔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정권마다 자기편을 마지막 총장에 앉히려 하지만 착각인 경우가 많았다.

□ 정권 마지막 총장들 가운데 김태정 총장과 임채진 총장은 새 정권에서 재신임 받았지만 그 끝은 좋지 않았다. 김 총장은 대선 두 달 전 터진 야권 후보인 DJ 비자금 의혹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고 선언해 DJ 집권의 길을 열어 주었다. 그를 신임한 DJ는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시켰으나 옷 로비 사건으로 해임돼 재판까지 받았다. 대선 한 달 전 임명된 임 총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유임되자 임명권자였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칼을 들이댔고, 그가 서거하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 DJ 정권 말 대통령의 두 아들을 구속한 이명재 총장은 피의자 구타 사망사건으로 대선 두 달 전 물러났다. 뒤를 이은 김각영 총장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노 대통령의 불신 속에 사퇴해야 했다. 김수남 총장도 지각 수사 끝에 자신을 임명한 박근혜 대통령을 구속했으나, 문재인 정부에서 재신임 받지 못했다. 이제 하산 길의 문 정부가 윤석열 전 총장 후임인 마지막 총장 인선에 들어갔다. 하지만 누가 임명되든 결국 어디서도 환대받기 힘든 정권 말 총장의 숙명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 게다가 문 정부 내내 개혁대상인 검찰의 결기, 오기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윤 전 총장이 대선에서 검찰을 지키겠다 선언하고, 검사들이 상대 진영 의혹에 강제수사로 호응하는, 끔찍한 사태가 거론될 정도다. 그런 점에서 검찰 중립이 시험 받을 대선을 앞둔 지금은 정권을 지킬 '방탄 총장'보다는 검사들이 따를 총장이 필요하다. 검찰을 불편부당한 정치적 중립지대에 있게 할 총장에게 요구되는 건 실력과 신망, 조직 장악력이 우선이고 문 정부와의 친연성은 맨 나중이다.

이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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