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빠귀, 혹은 변희수 죽이기

입력
2021.03.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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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 소수자 인권 분야를 깊이 공부해본 적이 없다. 기자로서의 관심도 노동 분야로 우선 쏠린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굳이 배울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예전 한 지인이 “두 남자를 버스에서 봤는데 연인이 분명했다. 징그러웠다”고 했을 때, 그래서 깜짝 놀랐다. 당황한 나는 고작 “이성애자들도 징그러운 사람 많아”라고 받아치고는, 그가 한심스러워 이후 멀리했던 것 같다.

자신도 그저 한 명의 ‘존재’이면서 왜 다른 ‘존재’보다 우월한 양, 배제하고 혐오할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것인지. 인권 문제까지 갈 것도 없이, 어느 모로 보나 이건 논리적이지가 않아서 혹시 지능의 문제인가 싶을 때가 많다.

이젠 세상을 떠난 트랜스젠더 군인 출신 변희수 전 하사가 겪어온 폭력들을 보면, 과연 이 폭력이 추구하는 게 무엇인가 묻게 된다. 탱크조종수로서 하사 중 유일하게 A등급을 받았던 그를, 육군이 “남성의 음경·고환을 지니지 못한 장애”를 이유로 강제 전역시켰을 때, 눈물을 흘리던 말간 얼굴의 그를 기억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성전환 수술을 심신장애 요건으로 본 것은 법률적 근거 없는 자의적 해석이며 ‘현역으로 복무하기 적합하지 아니한 경우’라고 볼 근거도 없다”고 막아섰고 소속 부대도 계속 근무를 건의했으나, 육군은 폭주했다. 유엔까지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남성의 생식기와 기갑부대의 임무수행이 무슨 상관이라는 걸까.

그의 사망 후 슬픔과 분노 속에서도 혐오는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남성 자격으로 지원해 여성이 된 것은 원칙 위배였다” “다시 여군으로 시험 봤으면 됐던 것 아니냐” “여군으로 근무했으면 여군들이 불편했을 거다” 등의 가해가 끊이지 않는다. 남성으로 입대해 여성으로 성전환 하면 내쫓는 게 원칙이라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고, 여성에게는 “유방이 없어 장애”라고 내쫓았던 피우진 중령 사례를 보면 난소 등이 없는 변 하사가 여군으로 입대하는 것도 보장할 수 없다. 그러니,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뭘 어쩌라는 걸까. 그저 자기 자신이고 싶었던 그가 무슨 피해를 줬길래 못 잡아먹어서, 죽은 후에도 못 죽여서 안달일까.

여군들은 변 하사와 함께 근무해도 좋다고 답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혹시 불편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누군가의 언행이 아니라 그의 존재가 불편하다면 그게 바로 혐오이며, 그건 불편해 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변 하사는 세상을 떠났고 이제 이런 싸움조차 부질없게 느껴진다.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고발한 하퍼 리의 ‘to kill a mockingbird’(국내에서 ‘앵무새 죽이기’로 발간)에는, 공기총을 선물 받은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큰어치는 쏘아 죽여도 되지만 흉내지빠귀(mockingbird)를 죽이는 것은 죄”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흉내지빠귀는 곡식을 축내거나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만들지 않고 그저 노랫소리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새이기 때문이다. 변 하사의 생전 인터뷰 기사를 찾아서 읽어봤다. 고등학교 때 딱 한번 후배들을 집합시켰는데, 한 명이 길고양이를 괴롭혀서 훈계하려 그랬다는 아이.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해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줬던 그를 혐오의 공기총으로 쏘아죽인 이들은 만족하신가.



이진희 어젠다기획부장 river@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