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대본은 극비" '펜트하우스' 촬영장 007 작전

입력
2021.03.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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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펜트하우스' 오디션부터 가짜 대본
극중 죽는 배우 대본은 일급비밀
파주 세트장, 제작비 270억, 소품도 억억


"누구야, 넌!" 주단태(엄기준)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소스라친다. 장례까지 치른 전 부인 심수련(이지아)과 똑 닮은 여성이 떡하니 서 있어서다. 죽은 심수련이 부활한걸까, 쌍둥이가 나타난걸까. 지난 6일 방송까지 그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아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다.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가 전파를 타면 제작진과 시청자의 '밀당'이 시작된다. 제작진은 상식을 초월한 전개로 극을 매번 미궁으로 이끌고, 시청자는 온갖 추측을 쏟아내며 수사망을 좁힌다.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의 끝을 쫓는 시청자의 관심은 뜨겁다. 지난해 10월 처음 방송돼 지난달 시즌2의 문을 연 '펜트하우스'는 시청률 20%를 웃돌며 화제다.

기괴한 인물들의 행보가 외부로 노출되면 긴장감이 확 떨어지기 마련. '펜트하우스' 촬영장엔 '스포일러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극비인 대본은 어떻게 공유될까? 실제 펜트하우스는 어떤 모습일까?



"대본 한장마다 찍혀 있는 이름, 번호"

제작진은 여느 드라마처럼 인터넷에 비공개 스태프 카페를 만들어 대본 파일을 공유하지 않는다. 대본은 배우들에 '종이'로 전달된다. A 배우는 7일 "대본엔 장마다 내 이름이 적혀 있고, 고유 번호가 찍혀 있다"고 귀띔했다. 제작진이 출연자들에 대본 외부 노출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혹여 외부로 유출됐을 때 '범인'을 쉬 찾아내기 위해 한 복안으로 풀이된다.

드라마 관계자들에 따르면 특히 극에서 죽는 배우들의 대본은 일급 기밀처럼 다뤄진다.

B 배우는 "현장에서 A4 용지로 출력한 대본을 새로 받기도 했다"며 "그때 받은 대본엔 애초 알고 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사건 전개가 펼쳐져 있었다"고 말했다. '펜트하우스'에선 그간 민설아, 민원장, 조상헌, 윤태주, 천명수, 심수련, 양미옥, 배로나 등 8명이 줄줄이 죽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 변화가 수차례 이뤄졌고, 그러다 보니 미처 내용을 알지 못한 주연 배우들도 서로 물어보며 퍼즐 조각 맞추듯 이야기를 쫓아간다.

'펜트하우스' 내용 유출을 막기 위한 제작진의 '007 작전'은 촬영 전인 지난해부터 이뤄졌다. C 배우 소속사 관계자는 "오디션에선 '펜트하우스'가 아닌 '황후의 품격' 등 김순옥 작가 전작 대본이 주어졌다"고 말했다.




'억' 소리나는 소품... 외부 신발 사용 금지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 건 웅장한 '헤라팰리스'다. 이 초호화 아파트는 극 중 서울 강남구 소재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경기 파주에 세트로 지어졌다. 규모는 약 4,000㎡(1,200평). 아파트 외관은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했지만, 아파트 로비 내 분수대와 헤라상 등은 모두 맞춤형으로 제작됐다.

제작사인 초록뱀에 따르면 '펜트하우스'에 투입된 제작비는 약 270억원이다. 화려한 세트만큼 소품도 '억' 소리난다. 주단태 집에 있는 오디오는 6억원에 달한다. 워낙 고가의 협찬 제품들이 쓰이다 보니 펜트하우스 사용 수칙은 엄격하다. D 배우 관계자는 "단톡방에 '커피 들고 들어오지 말아 주세요' '소파에 앉지 말아주세요' 등 소품팀 공지가 수시로 올라온다"며 "촬영이 없을 땐 오디오와 소파 등에 모두 천이 덮어져 있다"며 웃었다. 대리석이 깔린 주단태 펜트하우스에 들어가려면 실내용 신발을 따로 신어야 한다.

'펜트하우스'는 두 시즌 40회(시즌1 20회·시즌2 20회)로 기획됐으나, 세 시즌 45회(시즌1 21회·시즌2 12회·시즌3 12회)로 확장됐다. 드라마 공동 제작사인 스튜디오S 한정환 대표는 "김 작가가 할 말이 많아 도저히 시즌2 20회로 마무리할 수 없다고 해 시즌3로 나눠 올해 방송한다"고 밝혔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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