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2일 휴무가 도입된 지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더 많은 회사들이 하루를 더 추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주 4일 근무제'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1926년 미국 포드 자동차를 창업한 헨리 포드는 현재의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해 노동시스템을 바꿔놓았다. 그 전에는 주 6일 혹은 일주일 내내 출근해 일했던 근로자들이 허다했다.
포드는 주 6일 48시간 근무제를 폐지하고 주 5일 40시간 근무제를 전면 도입한 인물이다. 그가 토요일과 일요일에 공장 기계를 강제로 꺼버렸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노동자들이 매주 이틀의 휴일로 더 많은 여가시간을 갖게 되면, 더 많은 차를 살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포드의 결정 이후 한 세기 만에 세상은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재택 근무, 탄력근무제 등을 통한 '반강제적' 실험이 주 4일 근무가 실제로 가능하겠다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어서다.
그러나 아직 시기상조라고 우려하는 이들도 많다. 급여를 줄이지 않고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현재 지구촌 곳곳에는 주 4일 근무제를 향한 마라톤 경주가 시작됐다.
미국 경제지 블룸버그에 따르면 독일 정보기술(IT)기업 '아윈(Awin)'은 올 1월부터 아예 주 4일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급여나 복지혜택 등의 삭감없이 휴일을 하루 더 늘린 것이다.
이런 결정은 지난해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매주 금요일 점심시간 즈음에 퇴근하라고 권고했고, 이 실험은 직원과 고객 모두에게서 만족을 이끌어 성공했다.
아담 로스 아윈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행복하고, 참여도 높은 균형 잡힌 직원이 훨씬 더 나은 업무를 수행한다고 믿고 있다"며 "(이들은) 더 스마트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만큼 생산성도 높다"고 말했다.
주 4일 근무제 도입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금요일에 들어오는 고객 요청이 신속하게 처리되도록 하는 등 일부 애로사항이 있었다. 하지만 직원 80여명이 태스크포스(TF)에 자원해 최대한 원활한 전환(주 4일 근무제)을 위해 계약 변경 논의, 1시간 회의 절반 단축, 협업을 용이하게 하는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는 등에 팔을 걷어 붙였다.
로스 CEO는 "기업들은 사람들의 신체 건강을 위한 준비를 하지만 결코 그들의 정신적인 건강을 위한 것은 아니다"며 "나는 변화를 보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위한 동기부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브 비누 등으로 유명한 기업 유니레버도 지난해 12월부터 뉴질랜드 사무소 직원 80여명을 대상으로 주 4일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즉 올해 1년 동안 테스트를 거치기로 했으며,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경우 전 세계 15만여명의 직원들에게 근무 시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유니레버는 불필요한 작업을 줄이고 더 빠른 의사결정 지원을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 관리 소프트웨어를 도입할 계획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닉 뱅스 유니레버 뉴질랜드의 전무는 "우리의 목표는 시간이 아니라 생산량에 대한 성과를 측정하는 것"이라며 "즉 동일한 급여로 더 적은 시간에 동일한 양의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 4일 근무제의 성과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일본 지사에서 벌인 모험적 실험으로 증명됐다.
MS 재팬은 2019년 8월 2,300여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5주 동안 금요일에 쉬게 하는 주 4일 근무를 시행했다. 급여는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그 결과 생산성이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결은 간단했다. 회의 시간을 30분으로 제한을 뒀고, 원격 통신을 장려하며 (의사 소통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데 노력했다. 그 결과 근무 시간은 줄어도 생산량은 증가하는 긍정적 결과를 얻게 됐다.
이뿐만 아니다. 이 회사의 주 4일 근무 형태는 전기를 비롯해 사무실의 자원을 아끼는 등 재정적으로 도움이 됐다. 실제로 프린터를 이용한 인쇄 페이지 수는 같은 기간 60% 가까이 급감했고, 전력 소비 역시 23% 줄었다.
이 같은 긍정적 신호는 여러 곳에 영향을 미쳤다.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스페인 부총리는 지난해 12월 '주 4일 8시간 근무'를 제안했다. 스페인 정부는 주 4일(주 32시간) 근무제로 전환하는 기업에는 5,000만유로의 인센티브 지급을 제안했다.
또한 지난해 11월 존 맥도넬 전 영국 노동당 쉐도우 캐비넷(그림자 내각) 총리 등 유럽 전역의 정치인, 노조 대표 및 운동가들이 이끄는 단체는 특별한 서한을 공개했다.
이 단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지도자들에게 "코로나19로 주 4일 근무가 이 위기를 극복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며 "이 기회를 포착해 임금 손실 없이 노동시간 단축으로 나아가야 할 순간"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이 단체는 “역사를 보면 경제 위기와 침체기에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것은 실업자와 과잉 고용 사이에서 더 많은 이들이 일을 공유하는 방법으로 사용돼 왔다"고 주장했다.
'과로사'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았던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주 4일 근무에 대한 열망이 들끓고 있다.
인도 정부는 다음들부터 새로운 노동법을 시행할 방침이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임금, 노사관계, 사회보장, 산업 안전 보건 및 근로 조건에 관한 4개 법규에 따라 44개의 중앙 노동법을 통합하기로 했다. 이로서 기업은 최대 주 48시간 근무조건 아래 주 4일·5일·6일 근무 중 하나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주 4일 근무를 위해 하루 12시간 강도높게 일해야 하지만, 인도 사회에서는 일주일 중 사흘을 쉴 수 있다는 안도감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 언론들은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자의 생산성과 사기를 높이는 동시에 일과 삶의 균형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도 주 4일 근무제에 대해 낙관적이다. 일본 집권당 자민당 산하 일억총활약 추진본부는 1월 '주휴 3일제(주 4일 근무제)에 대한 초안을 마련했으며 차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에게 제안할 예정이라고 일본 요미우리신문 등이 전했다.
코로나19로 재택 근무가 확산하면서 희망하는 사람에 한해 주 3일을 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초안에는 육아나 간병, 대학원 진학 등에 장점이 될 수 있으며, 일본 사회의 유연한 취업 형태에 대응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민간 기업이 도입을 어떻게 하는지 본 뒤 공무원으로 대상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주 4일 근무제 공약이 눈에 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려는 기업들에게 인센티브 등 재정적 지원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주 4.5일 근무제를 들고 나왔다. 박 전 장관은 "주 4.5일 근무제를 확립시켜 청년 일자리 문제, 여성의 삶과 육아, 보육 문제 등 여러 복지 문제와 연결돼 있는, 이것을 통해 서울시 대전환 이루겠다"고 말했다.
주 4일 근무에 대한 낙관론은 허상이 아니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구직사이트 지프리크루터(ZipRecruite)에 따르면 주 4일 근무를 언급한 채용 게시물의 비율은 지난 3년 동안 3배가 증가했다. 기업들이 근로 조건으로 주 4일 근무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실로 다가올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영국 싱크탱크인 오토노미의 윌 스트롱 책임연구원은 "주 4일 근무제가 추진력을 얻고 있다"며 "대부분의 기업에서 근무 시간 단축은 전적으로 현실적인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영국 레딩대도 "주 4일 근무제를 채택한 기업의 3분의 2는 직원 생산성이 향상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근로 환경을 바꿀 순 없는 노릇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의 알리바바그룹 창업자 마윈(馬雲)은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996' 직장 문화를 자주 언급해왔다. 996은 주 6일, 오전 9시~오후 9시까지 일하는 것이다. 이런 직장 문화를 가진 중국에서는 주 4일제를 폭넓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영국에서도 노동당이 표준 근로시간을 10년 안에 주 32시간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에도 불구하고 2019년 총선에서 패배했다. 기업들 입장에선 임금을 삭감하지 않고 근무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생산량 감소를 우려해 꺼리고 있다.
독일 쾰른 경제연구소의 홀거 슈퍼 노동시장 분석가는 "근로자들은 일을 더 많이 할수록 더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며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해 생산성이 실제로 향상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