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저력 잃었다" 질책한 이재용, 위기 타개책 고삐 죄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임원들을 모아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며 "경영진부터 철저히 반성하라"고 꾸짖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공식 언급을 자제해왔던 이 회장이 삼성 위기론을 직접 꺼내며 "사즉생(死卽生·죽기로 마음먹으면 산다)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하라"고 주문한 사실이 공개되자 삼성전자 주가는 5.3% 급등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최근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한 이 회장의 메시지를 공개했다. 삼성은 2월 말부터 4월까지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 계열사의 부사장 이하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을 하고 있다. 삼성이 전 계열사 임원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한 건 2016년 이후 9년 만이다. 교육 참석자들은 먼저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과 고 이건희 선대회장 등 오너 일가의 경영 철학이 담긴 영상을 봤다. 이 회장이 올해 초 십여 명 규모의 삼성 사장단 세미나에서 신년 메시지로 전했던 내용도 전체 임원에게 공개됐다. 다만 영상에 이 회장이 등장하지는 않았다. 이 회장은 "국가 총력전의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위기 때마다 작동하던 삼성 고유의 회복력은 보이지 않는다"고 현재 그룹 안팎의 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삼성 위기론의 진원지인 삼성전자의 부진을 콕 짚어 "우리 경제와 산업을 선도해야 할 삼성전자는 과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전 분야에서 기술경쟁력이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며 "과감한 혁신이나 새로운 도전은 찾아볼 수 없고 판을 바꾸려는 노력보다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고 꼬집었다. 이 회장의 지적처럼 삼성전자는 복합 위기에 처했다. 특히 삼성전자 성장의 성패를 가를 반도체 사업 부진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2024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영업 이익은 15조1,000억 원으로, SK하이닉스(23조4,673억 원)에 크게 못 미쳤다. 인공지능(AI) 가속기에 꼭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은 수조 원대의 적자를 내며 대만 TSMC와 시장 점유율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 삼성은 경쟁력 회복에 시동을 걸고 있다. 2024년 연말 인사에서 삼성글로벌리서치 아래 경영진단실을 새로 두고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 LSI 사업부 등 부서별 평가에 나선 게 대표적 사례다. 같은 시기 미래로봇추진단도 신설해 미래 로봇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회장은 "경영진보다 더 훌륭한 특급 인재를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양성하고 모셔와야 한다"며 "성과는 확실히 보상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신상필벌이 우리의 오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필요하면 인사도 수시로 해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니라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라고 덧붙였다. 이런 발언이 공개되면서 삼성전자의 대형 인수합병(M&A)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이 "M&A의 많은 사항이 진척됐고 조만간 주주 여러분들께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지만 이후 진전 사항이 공개된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