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인 전차 조종수 변희수 전 하사와 이분법적 성별 구분을 거부한 김기홍 활동가가 세상의 편견에 맞서다 세상을 등졌다. 이들과 같은 성 소수자를 보호할 최소한의 법적 보호망인 차별금지법 제정안은 지난해 6월 발의 후 제대로 논의되지도 않고 있다.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변 전 하사의 죽음에 당 차원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한국일보가 4일 당의 입장을 묻자 "이슈가 많아서 입장을 내기 어렵다"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민주당은 오후가 돼서야 청년대변인 명의로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깊이 느낀다"는 4줄짜리 논평을 냈다.
일부 의원들은 자성의 목소리로 변 전 하사를 추모했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다. 지지부진한 평등법, 차별금지법도 죄스럽다"며 "국회는 부끄러워 해야 한다. 적어도 이런 아픈 죽음은 막으려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도 "당신이 당한 일이 부조리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해왔으면서도 정작 정치인이 돼서는 그 일을 바로잡는 일에 동참하지 않고 잊고 지냈다"며 "늦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 차별과 혐오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당 차원의 메시지와 추모 공간을 마련한 것은 정의당이었다. 조혜민 대변인은 "사회를 변화시켜야 할 정치권은 앞다투어 혐오 발언을 하기에 바빴고 정부와 여당 역시 뒷짐을 졌다"며 "누구나 존엄하게 '오늘'을 살아야 함에도 그 삶을 뒤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정치권은 성 소수자 문제 해결에 나서기보다 정쟁 도구로 삼기도 한다. 성 소수자 이슈로 다수를 결집시키려는 방식이다. 제3지대 서울시장 후보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퀴어축제를 보지 않을 권리"를 주장했다. 다른 서울시장 후보들도 간접적으로 동조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성 소수자 이슈를 부정하는 것보다 회피하는 것이 더 극악무도하다"며 "회피하는 정치인들은 소수자 인권에 대한 논의 자체를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지적했다.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처리됐다면, 변 전 하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주어질 수도 있었다. 국회에 발의돼 있는 차별금지법에는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인종, 종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고용이나 교육·행정서비스 이용 등에서 생길 수 있는 '차별'을 막는 내용이 담겼다.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은 3개월이 지난 지난해 9월에서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러나 거대 양당의 외면 속에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장 의원은 "법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단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다"며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야당 의원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던 장면처럼 편가르기 용으로만 언급된 게 전부"라고 말했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도 다음달 차별금지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지만 보수 개신교계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