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미얀마 청춘들의 마지막 절규

입력
2021.03.04 16:50
14면
'수요일 학살' 상징, 19세 태권 소녀 
 '피의 일요일' 첫 고발한 23세 청년 
 쿠데타 이후 첫 희생자, 19세 소녀
14세 소년, 만삭 교사, 엄마도 희생

'봄의 혁명'… "끝까지 싸워달라", "유엔이 나서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한가", "다 잘 될거야".

미얀마 청춘들이 스러지고 있다. 꽃다운 나이, 각자가 품은 꿈도 저물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지막 절규는 산 자들의 가슴에서 부활해 강물처럼 흐른다. 조준 사격, 옥상 저격에 이어 기관총까지 난사한 군부의 학살로 숨진 희생자는 3일 현재 50명을 훌쩍 넘는다. 숫자는 말하지 않는 청춘들의 마지막 순간은 외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고발처럼 미얀마의 오늘을 끔찍하게 증언한다. 죽어서 살아난 그들을 기억한다. 그들이 죽음으로 남긴 메시지를 기록한다.

"총알 피하라" 남부터 챙긴 19세 태권 소녀

3일 '수요일의 학살'이라 불릴 만큼 적어도 38명의 시민이 미얀마 전역에서 군부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4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태권도 챔피언으로 알려진 차이신(19)은 제2도시 만달레이 시위 현장에 있었다. 지난해 11월 처음 투표한 걸 자랑스러워했던 차이신은 선거 결과를 뒤집은 군부의 쿠데타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경찰이 던진 최루탄을 다시 집어 던지고, 최루 가스 탓에 고통스러워하는 시위대를 위해 수도관을 발로 차 물을 적실 수 있게 했다.

총격이 시작되자 차이신이 현수막 뒤에 몸을 가리고 주저앉아 왼팔을 땅에 댄 채 오른팔로는 다른 사람에게 앉으라는 신호를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한 시위 참가자는 "경찰이 총을 쏘기 시작했을 때 차이신은 '앉아, 앉아! 총탄에 맞을 수 있어'라고 말했다"며 "차이신은 자신보다 남을 먼저 보호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람들이 흩어졌고 얼마 뒤 '한 소녀가 머리에 총을 맞고 숨졌다'는 소식이 시위대에 전해졌다. 침상에 눕혀진 사진 속 시신은 차이신이었다. 태권도 교사이자 댄서였던 그는 죽음을 각오한 듯 SNS 계정에 혈액형(A형)과 비상 연락처, '각막과 장기를 기증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생애 마지막 날 그가 입고 있던 검은색 윗옷에 적힌 'Everything will be OK(다 잘 될거야)'는 SNS에 급속도로 퍼지며 그의 유언이자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구호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영어 이름은 '천사(Angel)'였다. 그가 친구에게 남긴 마지막 SNS 메시지는 이렇다. "이게 내 마지막 말일지도 몰라. 많이 사랑해, 잊지마!"

"얼마나 더 피를 흘려야…" 봄의 혁명 꿈꾼 23세 청년

'피의 일요일'이라 명명된 지난달 28일엔 최소 18명이 숨졌다. 기술자인 니니아웅텟나잉(23)은 그날 오전 최대 도시 양곤 거리에 있었다. 총성이 계속되는데도 그는 불편한 자세로 자신이 흘린 피 속에 누워 있었다. 머리엔 헬멧을 쓰고 오른손엔 휴대폰을 움켜쥐고 있었다. 시민들 도움으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가슴에 총을 맞은 그는 곧 사망했다.

그는 '봄 혁명'이라고 적힌 윗옷을 입고 있었다. 아랍의 봄처럼 민주화를 이루려는 소망을 담았다. 전날 SNS엔 '유엔이 행동에 나서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신이 필요한가'라고 적었다. 이후 그 글귀는 시민들의 주요 구호가 됐고,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 됐다.

"계속 싸워달라" 첫 순교자 19세 소녀

지난달 9일 수도 네피도에선 군부의 총격 첫 희생자가 나왔다. 스무 번째 생일을 이틀 앞둔 킨은 물대포를 피해 시위대와 떨어진 버스 정류장에 있었다. 총성이 울리고 킨은 쓰러졌다. 머리에 총탄이 박힌 엑스레이 사진에 세계가 분노했다. 생명유지장치에 의지하다 19일 숨졌다. 유족은 "(민주주의 회복)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계속 싸워달라"고 호소했다. 주요 도시에 국한됐던 반(反)쿠데타 시위는 이후 전국으로 확산됐다.

14세 소년, 만삭의 교사, 아이 엄마 등 안타까운 죽음은 계속 늘고 있다. 그러나 4일에도 저항의 본이 된 청춘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시민들은 시위 대열에 동참했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