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예고대로 국민들에게 ‘코로나 청구서’를 내밀었다. 법인세율을 현행 19%에서 2023년 최고 25%까지 올려 감염병 확산 여파로 텅 빈 곳간을 세금으로 메운다는 방침을 공식화한 것이다. 세계 각국이 지난해 천문학적인 돈을 푼 상황에서 영국의 법인세 인상을 시작으로 부실해진 국가 재정을 ‘증세’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한 층 더 빨라질 전망이다.
3일(현지시간) BBC방송에 따르면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은 이날 하원에 이런 내용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추가 지원방안이 담긴 예산안을 보고했다. 2023년 4월 이후 순이익 25만파운드(3억9,000만원) 이상 기업이 무는 법인세율을 25%로 올리는 게 핵심이다. 순이익 5만파운드(7,400만원) 이하 기업에는 19%의 현행 세율을 유지한다. 수낙 장관은 “25% 최고 법인세율을 적용 받는 기업은 전체의 10%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의 법인세율 인상은 1974년 이후 47년만이다. 대신 정부는 재계를 달래기 위해 기업 신규투자 비용의 130%를 공제하는 ‘슈퍼 공제 방안’도 내놨다. 소득세는 면세점을 2026년까지 조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과세 대상과 세액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세율에 손대지 않으면서도 100만명 이상에게서 소득세를 더 걷게 된다.
영국 정부의 증세 시동은 지난해 코로나19 경기침체 방어를 위해 정부가 과감한 재정지출에 나서면서 부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2020~2021 회계연도 정부 차입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7%인 3,550억파운드(557조원)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최다를 찍었다. 2019년 85.4%였던 영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111.5%까지 급등할 전망이다. 수낙 장관은 “정부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지원을 목적으로 기업에 1,000억파운드(156조원) 이상을 썼다”며 “이제는 기업들이 회복에 공헌하는 게 공평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이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법인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증세 부담을 덜어줬다. 영국은 법인세율을 올려도 주요 7개국(G7) 중 최저이며,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중에서는 5번째로 낮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지난해 기준 G7의 법인세율 평균치는 27.3%다. 미국 역시 조 바이든 대통령이 현재 21% 수준인 법인세율을 28%까지 올린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날 영국예산책임청(OBR)은 자국 경제가 2022년 여름이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고 봤다. 올해와 내년 성장률은 각각 4%, 7%로 전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