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나 플랫(♭) 어떤 것도 붙지 않았다. 음자리표만 그려져 있을 뿐 오선지에는 여백이 자리한다. C장조는 이렇듯 하얀 도화지를 닮은 조성이다. 첨가물이 없기에 순수하고, 담백하다. 조성음악의 근간인 셈이다. 태어나 처음 학교에서 "도, 레, 미, 파…" 하고 음계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조성이다.
지중배(이하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음악을 처음 배울 때 듣는 노래가 있다. 바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의 주제곡 중 하나인 '도레미송'이다. 알프스를 배경으로 동심 가득한 아이들이 합창하는 '도레미송'은 C장조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장재진(장): 동요 가운데 '반짝반짝 작은별'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모차르트의 '작은별 변주곡'도 C장조로 작곡됐다. 단순하지만 때 묻지 않은 음계가 동요와 잘 어울린다.
지: C장조는 장조음악 특성상 빈번하게 밝고, 단순하며 순수하다. 근대 화성학의 기초를 정립한 프랑스 작곡가 겸 이론가 장-필립 라모는 C장조를 두고 '행복한 음악을 위한 열쇠'라고 했다. 작곡가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때 묻지 않은 '하얀색'으로 묘사했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작곡가들은 C장조를 통해 아이들을 위한 곡을 많이 썼다.
장: 어린이가 악기를 배울 때도 기본이 되는 조성이다. 조표에 샤프나 플랫이 없기 때문에 악보에 등장하는 음표들은 쓰인 원음대로 연주하면 된다. 피아노의 경우 흰 건반만 치면 되고, 현악기는 지판에서 원래 음의 위치대로 현을 짚으면 되므로 헷갈릴 일이 없다.
지: 종합하면 C장조는 기본과 시작을 상징하는 조성으로 볼 수 있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약동하는 경칩(驚蟄ㆍ5일)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조성은 없을 듯하다. 베토벤은 서른 살에 C장조로 첫 교향곡을 썼다. 당대의 대가였던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새로운 거장의 탄생을 알리는 '환희'였다.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이 다음 달 21일 서울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한다.
장: 우리 사회의 근간을 구성하는 가정, 그리고 하나의 가정이 탄생하는 결혼과도 C장조는 밀접하다. 신부가 입장할 때 결혼식장에 울려 퍼지는 행진곡은 멘델스존이 쓴 '결혼행진곡'인데, 마찬가지로 C장조 곡이다.
장: 순백색을 띤 C장조는 흡사 아무런 토핑(Topping)이 들어가지 않은 플레인 요구르트를 닮았다. 담백함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견과류나 과일 등 어떤 토핑을 더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맛으로 변주 가능하다.
지: 부재료의 활용 방식에 따라 C장조의 스펙트럼은 넓다. 팝에서는 비틀스가 부른 '렛잇비'를 들 수 있다. '순리에 맡기라'는 가사와 더불어 서정성이 짙은 노래다. 클래식으로는 지난해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신보를 통해 연주한 슈베르트의 '방랑자환상곡'이 인상적이다. 20대 작곡가가 꿈꾸는 미래의 희망과 활기가 담겨 있다. 피아니스트 정한빈이 1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이 곡을 들려준다.
장: 베토벤 교향곡 1번에서 C장조가 시작을 알렸다면, 슈베르트와는 최후를 함께했다. 슈베르트가 숨을 거두기 몇 달 전에 쓴 교향곡 9번은 '그레이트'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의 교향곡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50분이 넘는 연주시간 내내 웅장함이 맴돈다. '천사가 숨어 있는 듯하다'는 슈만의 평가대로 숭고하기까지 하다. KBS교향악단이 7월 29일 김선욱 지휘로 연주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