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잎' 한 다발... 우리 일상에도 희망이 피겠죠

입력
2021.03.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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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코로나19로 모두가 지친 겨울을 보냈기 때문일까요, 이해인 수녀의 <봄이 오는 길목에서>라는 시가 예년과 다르게 다가옵니다.

인간의 언어가 유별나고 직설적이어서 거슬릴 때가 많지만, 자연은 항상 순리대로 흐르며 우리에게 가야 할 길을, 해야 할 일을 넌지시 알려주곤 했습니다.

미처 몰랐던 내 주변의 소중함을 문득 깨닫게 된 지금, 겨울 어딘가에 숨어 꽃망울을 키워 온 봄이 인사를 건넵니다.

언제부턴가 떠날 채비를 마친 겨울이 슬그머니 발을 빼면 봄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기를 반복합니다. 그사이 꽃받침 위엔 어느새 ‘형형색색’ 잔치가 열렸네요.

2월의 끝자락,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훼단지로 꽃 마중을 다녀왔습니다. 봄이 겨우내 숨어 있던 곳이 바로 여긴가 봅니다. ‘화사하다’는 표현이 인색할 만큼 예쁜 꽃잎들이 저마다 색을, 모양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겨우내 잘 버텨온 우리 모두 수고했다고, 행복하라고 ‘꽃잎' 다발을 만들었습니다. 흰색 면포를 깔고 줄기부터 이파리, 각기 다른 꽃잎과 꽃술을 배치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색을 발현할 수 있도록 조명도 추가했습니다.




한껏 ‘본색’을 드러낸 꽃잎 중에서도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은 몇몇을 소개하겠습니다. ‘당신의 시작을 응원해’라는 꽃말을 지닌 프리지어. 노란색으로만 알고 있던 프리지어의 주황 꽃잎이 봄 햇살을 쬐는 듯한 따스함을 더해 주네요. 짙은 남색의 델피늄은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 어울리니 더 화려합니다. 꽃말도 달콤해서,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게요’ 랍니다. 살랑살랑 노랑 나비가 꽃이 된 것 같다는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도 빼놓을 수 없겠죠. 꽃말마저 ‘매력’이니까요.




그래도 못내 아쉬워 더 가까이 다가가 봤습니다. 평상시 꽃잎에 가려 보이지 않던 꽃술이 비로소 보였습니다. 모시기 어려운 ‘특별한’ 존재라 접사용 특수 렌즈가 없이는 기록이 불가능했죠. 웬걸요, 꽃잎 속에 수줍게 숨어 있는 줄로만 알았던 꽃술은 의외로 활기차고 당당해 보였습니다. 꽃술 본연의 색깔과 모양은 우리가 알고 있는 꽃의 존재와 전혀 달랐습니다. 마이크로 세상에선 그 자체로 꽃이었습니다.

숨바꼭질 같던 봄꽃과의 만남이 이제 곧 일상이 되겠죠.

성큼 다가온 봄, 우리 모두 꽃길만 걸어요.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진한 꽃 향기로 코로나의 시름 날려버려요.




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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